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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軍事革新으로 본 戰爭史 90 군사연구 제127집 워게임을 통해 대규모 기동훈련을 감독하고 통제를 하였다. 이러한 참모본부 시스템은 소수의 우수자원인 군사 엘리트를 배출하게 되었고, 당시 쾨니히그래츠 전쟁계획을 수립했던 장본인이기도 한 헬무트 폰 몰트케가 바로 이 시스템이 배 출한 대표적인 인물이라 하겠다. 따라서 전쟁대학을 졸업하고 참모본부 요원으로서 활약했던 몰트케는 지속적으로 전쟁을 위해 훈련을 주도하고 워게임 등을 실시해 오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일선에서 각개격파 등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포위 작전”을 실현할 수 있었던 하나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4) 산업기술 발전 프로이센은 산업혁명의 기술을 이용하여 노리쇠 장전 라이플, 일명 “바늘 총”을 개발하고, “철도”를 이용한 병력수송으로 신속한 기동이 가능해질 수 있었 고 “전신”을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광범위한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작전을 효과 적으로 지휘통제할 수 있었다. 먼저, “바늘총”은 오스트리아군의 패배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오스트 리아군이 사용하고 있던 총구 장전 머스킷보다 월등히 우수한 노리쇠 장전 라이 플은 수적으로 우세한 오스트리아군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만약 빠르게 발사하는 라이플로 무장하지 않았다면, 프란제키의 영웅적인 제7사단은 결코 스비프발트의 그 중요한 위치를 사수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에 따라 “대포위 작전”도 실패했을 것이다.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에 비해 철도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약 21일 동안 19만 7,000명의 병사들과 5만 5,000마리의 말을 수송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몰 트케가 소령시절부터 군대에서 철도를 이용한 수송수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후부터 참모본부의 작전계획을 원활하게 실행할 수 있도록 철도를 적극 활용하 였으며, 이는 예비군 제도에 의존해 있던 프로이센군의 취약점인 속도를 보완하 여 오스트리아군보다 더 빠르게 수송하고 집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전신”의 활용은 작전실시간에도 본부와 전방에 배치된 각 부대들과도 통신소통 이 가능하게 되어 보다 더 넓은 지역에서도 효과적으로 지휘통제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몰트케는 통신소통 두절상황을 극복하고 중앙집권적인 지휘를 지 양하기 위해 “임무형 지휘” 개념도 병행해서 적용함으로써 작전실시간 우발상황 에도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