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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전 쟁 사 군사연구 제127집 89 유명한 칼 폰 클라우제비츠6)가 이 전쟁대학의 초기 교장이었고, 이러한 전쟁대학 에서 교육받은 장교들 중 우수한 인력들이 새롭게 창설된 참모본부의 일원이 되어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전쟁계획을 수립하는 등 전쟁을 사전 치밀하게 준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이러한 학교를 건립한 이후부터는 능력을 기준으 로 장교를 선발하여 우수인력을 확보하고 능력이 없거나 과거 지향적인 군인들은 과감히 퇴역시키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그리고 모든 장교들은 선발된 이후에도 시험에 합격해야만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됨에 따라 경쟁구도 속에서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고 전략과 전술적인 식견이 향상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농부를 징집하여 구성된 오스트리아 군대로서는 이러한 군사교육 개혁을 통해 체계적인 교육훈련을 바탕으로 자신감과 사명감으로 무장된 프로이센 군대를 상대로 이긴 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던 것이다. 3) 참모본부 제도 정착 프로이센의 참모본부는 1803년과 1809년 사이에 창설된 이후 최소 50명 에서 최대 100명 이내의 가장 유능하고 총명한 장교들로 구성되어 전쟁계획을 담당 하였다. 이러한 참모장교들은 각 야전군, 군단 그리고 사단 지휘관의 부관으로 임 명되어 지휘관들이 부대를 통솔하는 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자 하였다. 또한, 참모장교들은 1년에 2회 이상 실제 전투가 행해졌던 곳에서 본인들이 연구한 옛날 전투에 관해 현지에서 사례를 발표하고 토의하곤 하였다. 이는 곧 현대적인 의미 에서 보면 합참이나 예하 제대에서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주요 참모들이 직접 과거 전적지에서 현지 전술토의를 통해 교훈을 도출하고 이를 참고하여 보 다 발전된 새로운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것과 유사하다 할 수 있겠다. 또한, 참모본부 요원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지도와 모형 테이블에서 정교한 시나리오를 시연하는 워게임을 실시하였고, 1년에 두 번 여름과 가을 야전에서의 6) 류제승 역,「전쟁론」(책세상, 2007), “프로이센의 장군이자 전쟁이론가, 전쟁철학자이다. (1780~1831) 평범한 프로이센 장교 아들로 태어난 클라우제비츠는 12살의 나이에 입대하여 전쟁학교를 졸업한 후 프로이센의 아우구스트 황태자의 전속부관으로 본격적인 군생활을 시작하였다. 실전경험을 쌓으면서 이론가로서 전쟁을 연구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을 뿐 아니 라, 스승인 샤른 호르스트와 함께 프로이센군을 개혁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 다. 이 과정에서 그는 군사실무, 군사정책, 국가정책 등의 문제를 다양하게 접하면서 전쟁 사, 전쟁이론 등의 분야에 대해 심층적으로 사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