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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軍事革新으로 본 戰爭史 88 군사연구 제127집 다. 프로이센의 군사혁신 1) 군 징병제 도입과 예비군 조직 프리드리히 대왕의 귀족과 용병 군대를 프랑스식 국민병 제도를 모델로 삼아 외국인 모병을 중지하고 부자들도 돈으로 면제받을 수 없는 보편적인 징 병으로 제도화했고, 향토방위군이라는 민병대와 실질적인 예비군 부대를 조직 했다. 이러한 군 징병제도와 향토방위군 및 예비군 부대를 조직함으로써 1815년 이후부터는 매년 40만 명 이상이 3년 동안 징병되어 군 복무를 하게 되었는데, 현역은 군복무를 마치자 마자 2년간 예비군에서, 14년간 향토방위군에서 복무 하는 것이 규정화 되었다. 따라서 평시에는 군사지출을 최소화한 가운데 전시 에는 군대를 소집할 수 있는 훈련된 대규모 인력을 조성하여 전쟁지속능력을 확보함으로써 결국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더 욱이 당시 프로이센은 예비군 중심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원령을 선포 후 신속한 기동 및 실전배치가 제한되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산업기 술을 이용한 전신과 철도를 이용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신속한 지휘통제와 기 동이 가능해짐에 따라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지 이틀이 지난 후 에 이미 보헤미아 국경선까지 신속하게 기동하여 진격함으로써 오스트리아군이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박탈하였다. 2) 군사교육 개혁 프로이센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공교육 시스템을 구축하여 모든 국민들을 대상으로 의무적으로 초등교육을 시키고, 그 중 일부를 선발하여 중등교육을 시 켰으며 소수 엘리트위주로 고등교육을 실시했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을 통해 교 실에서 산업화된 복잡한 전쟁기술들을 마스터할 수 있는 시민군이 양성되어 자연 스럽게 군내 우수인력 확보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민간 사회에서의 교육제 도와 더불어 군내에서도 우선적으로 프로이센군의 뼈대가 될 수 있는 부사관과 병을 훈련시킬 특별학교를 건립하였고, 장교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사관학교와 국 방대학을 설립했으며, 그 중 으뜸은 바로 전쟁대학이었다.「전쟁론」을 쓴 저자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