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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프리카 전투와 포르베크 장군 76 군사연구 제127집 첫째, 에이트켄 장군은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했다. 그는 자기가 지휘하는 영국 군이 상륙하여 진격만 하면 독일 원주민 부대는 그대로 도망칠 것으로 믿었다. 둘째, 전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정보를 무시했다. 상륙작전에 필요한 지도도 확보 하지 못했다. 따라서 상륙지로 가장 나쁜 밀림지역을 선택한 것이다. 전투가 벌어 질 지역의 지형이나 적의 배치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승리할 것으 로 생각했던 그는 우장(愚將)에 다름 아니었다. 셋째, 부하들의 조언을 철저히 무 시했다. 부하들의 상륙지 정찰 건의나 공격조언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넷째, 부하 들이 지휘관을 믿고 따르게 만드는 지휘력이 부족하였다. 군기를 세운다는 명분 하에 배에 탄 장병들이 악기상으로 고통 받는데도 육지에 하선시키지 않고 배 안 에서 군기를 세웠다. 애초부터 병사들과 한마음으로 전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섯째, 새로운 전술이나 무기체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차 대전에 이르러 유럽 의 각국들은 기관총을 이용한 전투와 참호전을 선보였다.20) 그는 나폴레옹 전쟁 때 사용하던 전술인 소총으로 무장한 보병이 진격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기관 총은 병사들을 나태케 만든다는 논리로 말이다. 결과적으로 기관총 4개로 무장한 독일군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고 말았다. 여섯째, 전투현장에서 부하들과 더불어 싸우지 않았다. 영국군이 탕가전투에서 쓰러져 죽어갈 때 그는 항구에 있는 배위 에서 지휘하고 있었다. 현장의 감각이 없으니 적시에 적절한 전술과 전략을 구사 할 수 없었다. 일곱째, 아프리카 흑인 원주민의 능력을 철저히 무시했다. 새카만 흑인들이 총이나 쏘겠냐며 무시하였으나 흑인 원주민 병력은 영국이 자랑하는 북 랭커셔 부대와 구르카 부대까지 무찔렀다. 에이트켄 소장에 이어 동아프리카 전 투에 투입된 스머츠 중장 또한 에이트켄 소장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뚜렷한 전 술전략 없이 무려 4년 동안 포르베크가 이끄는 독일 원주민 병력에게 철저히 농 락당하였다. 이에 비해 독일의 포르베크 장군은 승리하는 제너럴십을 갖춘 리더였다. 첫째, 그는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로운 지휘관이었다. 항차 아프리카에서도 영국군과 전 쟁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고 흑인 원주민을 선발하여 훈련시켰다. 그가 훈련시킨 흑인 원주민 부대인 아스카리스는 영국군에게는 저승사자와 같았다고 한다. 둘째, 애국심이 뛰어난 리더였다. 유럽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중에 아프리카에서는 평화 를 갈망하던 분위기에서 그는 아프리카에서 영국을 괴롭히면 영국은 유럽에서 20) 존 키건, 유병진 옮김, 세계전쟁사, 까치, 1996, p.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