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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전 쟁 사 군사연구 제127집 67 매우 건조하며 기온이 높아 초원의 풀이 말라버리고 물이 없으면 생존하기가 어 렵다. 초원 지역은 쾨펜의 기후구분으로는 Aw기후에 해당한다. 열대원야기후(熱 帶原野氣候)11)라고도 한다. 영국군은 탕가항으로 상륙하지 않고 시가지에서 1.5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상륙 했다. 최초의 상륙부대는 2개 중대 규모의 영국군이었다. 이들이 상륙한 것은 11월 2일 오전 9시 30분이었다. 그들이 상륙한 곳이 악어와 독사들이 우글거리는 밀림지 대였다. 불운하게도 가장 나쁜 장소에 상륙한 것이다. 상세한 정보 검토 없이 이루 어진 바람에 생긴 일이었다. 에이트켄은 밤을 새워 병사들을 상륙시켰다. 포르베크 는 원주민 병사들을 탕가로 이동시키는 중이었다. 탕가에 도착한 얼마 안 되는 독 일 장교와 흑인 원주민 병력인 아스카리스들이 인도 병사들을 견제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영국의 인도용병부대가 마을로 행군을 시작하였다. 물론 어떤 정찰 활동도 없는 상황이었다. 독일군은 별다른 경계도 없이 행군하는 인도 용병부대를 향해 공격하였다. 불의의 기습공격을 받은 인도출신 영국중대는 격퇴당하고 말았 다. 다시 밀림으로 쫓겨난 영국군은 밀림의 해충과 벌레, 악어와 독사들에 피해를 입었다. 오후에는 정글에서 소규모 전투가 이어졌다. 좀 더 많은 영국군이 상륙해 합류했다. 영국군은 독일 아스카리스들의 측면을 공격하려고 했다. 나무와 풀로 우거진 밀림에서는 상대방의 위치를 알기가 어려 웠다. 소총으로만 무장한 영국군은 공격하기가 어려웠으나 독일 아스카리스들은 앞을 볼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그저 기관총으로 수풀들을 향해 총알 세례만 퍼 부으면 되었다. 일부 영국군들이 기관총을 향해 돌격했으나 기다리는 것은 죽음 뿐이었다. 영국군 장교들은 인도 병사들에게 돌격을 명령했다. 그러나 공포에 질 린 인도병사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영국군의 공격이 멈추자 독일의 아스카 리스들이 영국군을 공격했다. 흑인 원주민들은 우거진 밀림 안에서도 적의 움직 임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영국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본대가 있는 곳까지 도망쳤다. 최초의 전투에서 영국군은 300명의 병력을 잃었다. 영국 군의 공격 여단장 마이클 티그는 에이트켄 소장에게 패배를 보고했다. 자신이 이끄는 2천여 인도 병사들이 2,500여 명에 이르는 독일 소총 부대에게 패배했다 고 말이다.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영국군 정보장교는 ‘독일군은 겨우 기관총 4정 으로 무장한 250여 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정보장교의 11) 로저 G. 베리․리처드 J. 초얼리, 이민부, 박병익, 강철성 옮김, 현대기후학, 한울아카데미, 2002, p.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