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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프리카 전투와 포르베크 장군 66 군사연구 제127집 탕가에 통보했다. 이로서 영국이 탕가를 공격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포르베크 는 모든 병력을 탕가로 집결시킨다. 당시 탕가에는 겨우 1개 소대 정도의 독일 병력만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활약하던 영국 정보장교들은 에이트켄(Aitken) 사령관에게 탕가 에는 독일의 수비 병력이 거의 없음을 보고했다. 그러나 일부 장교는 지금은 병 력이 없을지라도 포르베크가 철도를 이용해 독일군을 재빨리 배치시킬 수 있으니 정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남아프리카 기마 소총 부대의 지휘관은 자기 예하 부대를 상륙 전 정찰대로 보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에이트켄 소 장은 그들의 말을 묵살했다. 그는 싸울 것조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그만 코딱지만 한 나라에 병력이 있어봤자 얼마나 있을 것이며 설령 있다 해도 총 한번 쏘아보지 못한 흑인들을 상대로 무얼 겁내느냐는 것이었다. 그가 끌고 온 것은 백전노장의 영국병과 인도용병들 그리고 그 무섭다는 구르카 용병 까지 합해서 8,000명이나 되었다. 또한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함대까지 있었다. 이건 싸워보나 마나가 아닌가? “나의 용맹스런 북 랭커셔(Lancashire)부대와 구르카(Gorkha)용병들과 인도병 사들은 오합지졸의 독일 원주민 병력을 무찌르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 다. 병력도 몇 명 안 되는 그들은 우리의 모습만 봐도 도망칠 것이다. 우리는 성 탄절 이전에 탄자니아를 점령할 것이다.” 포르베크는 항구 입구에 낡은 선박을 가라앉혀 봉쇄하고 나름대로 진지를 구축 하고 있었다. 또한 탄자니아에 흩어져 있는 원주민 병력을 탕가로 집결시켰다. 당시 전투가 벌어졌던 탄자니아와 탕가지역의 지형 및 기후를 살펴보자. 탄자 니아의 북동부는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 산을 비롯해 산악 지대가 주를 이룬다. 북서쪽에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빅토리아 호와 아프리카에서 가장 깊은 탕가니카 호 등 호수 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중부 지방은 넓은 평원과 경작 지대가 펼쳐져 있다. 동쪽 해안 지대는 덥고 습하다. 적도 근처이기 때문에 일 년 기온 차는 거의 없으며 무덥고 습한 날씨를 보인다. 해안 지역은 밀림으로 이루 어져 있으며, 내륙 쪽으로 들어가면 황야가 펼쳐진다. 태양이 높은 여름에는 적도 저압대(赤道低壓帶)의 영향으로 우기(雨期)가 있고, 태양이 낮은 겨울에는 아열대 고압대(亞熱帶高壓帶)의 지배를 받아 건기(乾期)가 돌아온다. 건기 때는 생각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