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page

.. 3 전 쟁 사 군사연구 제127집 65 고집하는 뒤떨어진 장군이었다. 나폴레옹전쟁 당시 옛날의 전술을 고집하다 예나 전투에서 대패한 프러시아의 호엔로에(Hohenlohe) 장군10)과 비슷한 장군이었다. ‘기관총은 탄약을 낭비하는 데다가 병사들을 나태하게 만드는 무기일 뿐이다.’ 기관총을 가져가자는 부하의 조언에 화를 내는 고집쟁이였다. 전투에 있어서 생 명이라 할 수 있는 정보에 대해서도 무지하기 짝이 없었다. 탕가상륙작전을 하기 위한 작전지도조차 학생들이 사용하는 지리부도의 지도였다고 하니 코미디에 다 름 아니었다. 소수의 북 랭커셔(Lancashire) 대대와 구르카(Gorkha) 용병을 제외 한 인도병사들은 오합지졸이었고, 영국인 장교들과 인도인 병사들 사이에는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탕가해안에 도착할 무렵 영국군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아프리카를 공격하기 위해 인도에서 배에 올라탔을 때 기상이 악화되어 출항하지 못했다. 에이트켄 소장은 군기를 세운다는 명분하에 출항을 못한 16일간 병사들 을 배에서 내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병사들은 멀미와 설사로 고생했고 전력은 약 화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에이트켄 소장은 두 방면에서 독일군을 공격하기로 했다. 케냐에 있 는 영국 주둔군의 부대로 포르베크의 주력이 있는 킬리만자로 지역의 독일군 을 공격한다. 인도에서 출정한 부대는 탕가에 상륙작전을 실시해 양쪽에서 독 일군을 포위한다. 그런 연후에 천천히 포위망을 조여가며 철저하게 격파한다는 계획이었다. 포르베크는 정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장군이었다. 그는 인도의 정보요원을 통해 영국군이 탄자니아로 출발했음을 알았다. 또한 정기적으로 국경 을 넘는 흑인 정보원들을 통해 영국군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포르베크는 케냐의 영국군에 속해있는 흑인원주민의 전력이 위협적이지 않으며 무기도 조악 함을 알고 있었다. 킬리만자로 방면의 공격은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아프리카 해안으로 공격해 올 영국군의 전력은 강할 것으로 판단했다. 병력을 해안 쪽으로 옮겨 대비해야 하는데 영국군이 다르에스살람을 공격할지, 탕가를 공격할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병력이 워낙 적어 두 군데 다 방어를 할 수 없었 고 또 두 지역의 거리가 있어 병력을 바로 이동시키기가 어려웠다. 이런 어려움 을 해소해 준 것은 아이로니컬(Ironical)하게도 영국군이었다. 영국 상륙군은 탕가 를 공격하기에 앞서 예전 영국과 독일 사이에 체결되었던 평화협정이 깨졌음을 10) 로버트 그린, 안진환, 이수경 옮김, 전쟁의 기술, 웅진, 2007, p.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