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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전 쟁 사 군사연구 제127집 61 전쟁에 대비하는 마음가짐에도 양국의 차이가 있었다.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몇 차례 전쟁을 치렀던 영국은 독일이 상대가 되리라 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식민지 안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원주 민을 정규군으로 편입시켰다. 영국군은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가장 나쁜 소총을 지급했다. 영국인들은 아프리카 원주민 병사들의 소총 성능이 좋아지는 것을 원 치 않았다. 영국군은 원주민들이 영국에게 총부리를 돌릴 수도 있는 무기로 무장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또한 좋은 무기를 줄 경우 원주민들이 백인 상관을 존경 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따라서 원주민들이 보유한 군 장비는 거의 고물이었고 원 주민 병사들은 제대로 훈련되지도 않았다. 이에 비해 독일령에 살던 아프리카 원주민이 가진 소총은 영국령 원주민과 비 슷했지만 많은 훈련을 받았다. 아프리카에서 독일의 식민지 전쟁에 참여했던 프 린츠(Prinz)라는 군인이 전역한 후 탄자니아에서 흑인과 백인 지원병부대를 창설 했다. 그는 수백 명의 흑인 아스카리스7)를 강인하게 훈련시켰다. 흑인 원주민들 은 독일 정규군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프린츠(Prinz)는 동아프리카의 독일령 탄 자니아에서 가장 계급이 높은 파울 폰 레토우-포르베크(Paul von Lettow- Vorbeck) 대령(후에 장군으로 진급되었음. 다음 문장부터는 장군으로 기재)에게 훈련시킨 아스카리스(Askaris) 부대를 인계했다. <그림 2> 포르베크 장군의 모습 7) 아랍 군인이라는 뜻의 아스카에서 유래된 말로 독일군이 흑인 원주민을 훈련시켜 만든 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