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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프리카 전투와 포르베크 장군 60 군사연구 제127집 독일 총독 하인리히(Heinrich)는 1885년 베를린에서 맺었던 합의5)를 영국에 제 시했다. 하인리히(Heinrich)는 아프리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독일과 영국뿐이라 고 생각했다. 포르투갈과 벨기에는 전쟁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인리히는 영국 영사를 통해 영국을 설득했다. 영국도 아프리카에 있는 독일 식민지가 엄격 하게 중립을 유지한다면, 독일령 동아프리카의 중립성을 존중하겠다고 선언했다. 동아프리카에 평화가 유지되는 듯 보였다. Ⅲ. 영국과 독일의 식민지 정책과 전쟁대비 동아프리카를 식민지로 통치하던 대표적인 나라는 영국과 독일이었다. 영국은 남부아프리카에서 보어전쟁과 줄루족과의 전투를 통해 원주민을 무시하고 잔학하 게 대했다.6) “영국 사람들은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강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영국 사람들이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사람으로 보는 일은 절대 없다.” (카렌 블렉센) 덴마크인 블렉센(Blixen)의 말처럼 영국인들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았다. 그들은 가장 열등한 민족이며 개․돼지처럼 취급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영어를 읽고 쓰는 교육에 반대했다. 이에 반해 하인리히 총독이 다스리던 탄자니아의 독일령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독일 인들도 영국인처럼 아프리카 원주민 위에 군림한 것은 같았지만 바라보는 시선은 보다 인간적이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도 백인들과 같은 정도로 재능을 갖고 있 으나 계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지하다고 보았다. 탄자니아에는 학교가 1천 여 개 세워졌다. 독일령 탄자니아의 원주민들이 글을 읽는 수준은 아프리카에서 가 장 높았다. 독일은 탄자니아에 열대 생태학과 열대 농업 연구 기관을 세웠다. 대 규모 커피 농장을 만들어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삶을 향상시켰다. 아무렇게나 살아가던 원주민들이 농사에 적극 참여하면서 땅이 개간되고 개발되었다. 5)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합의에 동의한 나라들이 동의할 경우 아프리카의 모든 식 민지들은 중립으로 남는다는 내용. 6) 정토웅, 전쟁사 101장면, 가람기획, 1997, p.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