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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프리카 전투와 포르베크 장군 58 군사연구 제127집 무수히 많다. 병력의 수와 질, 전략, 전술, 보급의 정도, 제너럴 십(Generalshin), 병사들의 사기, 무기체계 등이 이에 속한다. 이 외에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 다. 날씨와 지형이다. 열세인 병력과 무기체계로 강한 군대와 싸워 이기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자연을 나에게 가장 유리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포르베크 장군은 이 를 철저하게 활용하여 승리를 거머쥐었던 정말 위대한 장군이었다. Ⅱ.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동아프리카의 정세 1914년 6월 28일 19살의 세르비아 대학생 프린치프가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했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선언했다. 독일과 터키, 불가리아가 오스트리아와 손을 잡았고, 나머지 국가가 이에 대항하여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2) 전쟁이 시작되자 자원이 부족했던 독일은 단기전으로 승리하기 위한 슐리펜(Schlieffen)계획3)으로 밀고 나갔다. 슐리펜(Schlieffen)계획 은 먼저 파리를 함락시키고, 프랑스를 항복시킨 후 병력을 동쪽으로 돌려 러시아 를 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프랑스와 벨기에, 영국의 저항이 거세어 서부전선은 고착상태로 들어갔고, 러시아의 동원이 빨리 이루어지면서 장기전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유럽에서는 독일과 프랑스, 영국이 국가의 운명을 걸고 전쟁에 돌입했다. 엄청 난 물량을 쏟아 붓는 가운데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갔다. 유럽이 전쟁에 빠졌을 때 이들 나라들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은 고민에 빠져 버렸다. 그림 1에서 보는 것처럼 당시 아프리카는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서구 열강의 식민지였다. 특 히 동부지역을 보면 북쪽으로부터 남쪽까지 직선으로 이집트, 수단, 우간다, 케냐, 잠비아, 짐바브웨,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거의 모든 국가가 영국의 식민지였다. 그 중간에 위치한 탄자니아가 독일의 식민지였고, 말라위와 모잠비크는 포르투갈 의 식민지였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유럽 본토에서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는 영국과 독일이 었다. 당시 아프리카 식민지를 다스리던 영국과 독일 총독들은 본국과 달리 평화 롭고 사이좋게 지냈다. 특별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영국과 2) 미야자키 마사카츠, 오근영 옮김,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2, 랜덤하우스, 2002, p.178. 3) 노병천, 세계도해전사, 연경문화사, 1996, p.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