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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근현대사 -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50 군사연구 제127집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자연과학의 경우에는 과거에 일어났던 현 상을 동일한 조건을 투입하여 반복 실험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인간의 과거 경험 을 다루는 역사학의 경우에는 동일한 사건을 반복하여 재현할 수가 없다. 왜냐하 면 주체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일한 사건에 대한 해석이 역사가에 따라서 또는 그가 처한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서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이 다. 심한 경우에는 해당 사건에 대한 왜곡이나 과장 및 축소도 배제할 수가 없다. 역사학의 객관성과 주관성에 대한 논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근대 역사 학이 등장한 19세기 중엽이래로 줄기차게 제기되고 고민해온 문제이다. 근대 역 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랑케(Leopold von Ranke)는 역사학의 객관주의를 주장 하였다. 그의 유명한 격언인 “본래 일어난 그대로(wie es eigentlisch gewesen)” 가 이 점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는 과거에 일어났던 사실을 그대로 현재 에 재현하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이고 이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일종의 ‘극 (極)’ 사실주의라고 볼 수 있는 그의 주장 덕분에 역사학은 철학이나 문학 등과 구별되는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자리매김할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과거 사실 을 밝히는 것이 역사학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이르러 랑케의 객관주의는 후속 학자들의 반발에 부딪히게 되었다. 크로체(B. Croce), 콜링우드(R.G. Collingwood), 베커(C. Becker), 그리고 베어드(C. Beard) 등으로 대표되는 학자들은 역사가의 주관 개입의 불가피성을 내세우면서 랑케의 입장을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중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재사’라고 하여 역사가가 발을 딛고 있는 현재의 관점이 역사해석에 투영될 수 밖에 없음을 강조하였고, 심지어 베커의 경우에는 ‘모든 사람은 그 자신의 역사 가’라고 하여 주관성 개입의 범위를 더욱 확대하였다. 무엇보다도 가장 극적인 표 현은 베어드의 ‘저 고상한 꿈(That Noble Dream)’이라는 글의 제목일 것이다. 베 어드는 미국 역사학회장 취임연설에서 랑케와 그의 추종자들이 주장한 ‘엄정한 객관성 유지가 가능하다’는 견해는 하나의 꿈에 불과할 정도로 너무 순진한 발상 이라고 비판하였다. 한마디로 역사해석에서 자연과학에서와 같은 객관성 유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양측의 입장을 절충하여 카(E.H. Carr)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하였지만, 역사적 작업에서 역사가의 주관성 개입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았을 때, 한국현대사를 바라보는 입장이 다양한 것 은 당연하다고 볼 수가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한쪽에서는 역사해석에서 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