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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군역사 및 역사일반 군사연구 제127집 49 권리를 강탈한 만행’이라는 기존 평가와는 달리 ‘토지거래를 활성화시키고 재산권 구축으로 금융 발전에 기여’한 사건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물론 해방 이 후의 역사에 대한 평가도 적극적이다. 예컨대, ‘남북분단을 초래한 단초를 제공한 것은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이었다’는 좌파 진영의 해석과는 달리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 기반한 근대 국민국가 수립의 계기가 되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 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당시 여건 하에서 친일파 처리 문제의 불가피성과 건국대통령인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졌다. 이는 1960년대에 핵심사건인 5ㆍ16 군사정변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한국현대사를 둘러싼 논쟁에서 키워드(key words)는 해방 이후부터 1950년대 까지에는 ‘민족’과 ‘국가’ 중 어느 것을 우선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1960년대 이후 의 경우에는 ‘산업화’와 ‘민주화’ 중 어디에 더 비중을 둘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 키워드를 통해 분단책임, 해방정국의 두 대표적 인물인 이승만과 김구의 위상, 이 승만 정권의 성격, 박정희 통치의 명암, 그리고 민주화 운동의 공과에 대한 다양 한 평가가 가능하다. 하지만 어느 경우에든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배타적, 폐 쇄적인 민족주의에 빠지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세계는 점점 더 혈연적 민족의 잣대보다는 인류 보편의 잣대인 ‘개인자유의 신장 및 복지의 증진’ 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한마디로, 민족은 20세기의 한국사를 조 망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유일하게 중요한 기준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면 이처럼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다른 근본적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이미 역사학의 본질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 역사학은 시간의 흐름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시간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우리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과거에 대해 알 수가 있는가? 이는 바로 과 거에 남겨진 기록물이나 유물, 즉 통칭하여 사료(史料)를 통해서이다. 그런데 사 료 스스로는 말을 못한다. 여기저기 사료들에 기록되어 있는 관련 내용들을 수집 및 선별하여 이를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을 하는 주체는 현실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역사가 이다. 사료와 일반대중 사이에 이러한 상황에 처한 역사가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 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현재에 발을 딛고 있는 역사가가 사료라는 매개 를 통해서 과거의 사건을 현재에 살려내는 것이 역사적 작업인데, 이때 역사가가 어떠한 성향의 사람인가 그리고 현실의 영향에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서 과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