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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특 집 군사연구 제127집 27 잘 알려진 778고지 일대에서 중공군 제12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유엔군 반격의 발 판을 마련하는 귀중한 계기가 되었다. <그림 3> 한국군 제3군단의 철수 제3절은 한국군 제3군단의 퇴각에 관련된 내용을 관련사실에 입각해서 분석하 였다. 우선 주목할 것은 군단 내 좌측사단인 9사단이 미 제10군단 우측사단(한국 군 7사단)과 정보교환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당시 제9사단은 전반적으로 상급 및 인접부대와의 협조 및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중공군의 공세 내내 중공군은 물론 한국군에 대한 적절한 정보도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 고 있다.24) 이는 당시 제9사단 제30연대장이던 손희선의 아래와 같은 증언을 통 해서도 알 수 있다. “현리지구 철수전에서 왜 우리가 힘없이 무너졌는지 지금 생 각해도 잘 모르겠다.(5월 17일 오전에야 용포로 이동하라는 한국군 제9사단장의 24) 일례로 제9사단의 부대사에는 당시 제7사단이 거의 철수한 시점에서도 관련된 상황을 다 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사단은 적의 공격이 개시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접적이 없었다.’ 제9사단, 『부대사』(1982), p.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