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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리-한계전투 발간의 의의 26 군사연구 제127집 한국군 제5사단이 5월 7일부로 미 제10군단에 배속된 이래 미주리선으로 진출하 여 단독으로 홍천-인제를 연결하는 도로를 확보하고 논리 북쪽의 고지군을 점령 하는 전과를 올릴 정도로 강한 전투력을 보유한 부대였기 때문이었다. 중공군 제12군은 한국군 제5사단의 전방에 5월 15일 밤부터 돌격부대를 진출시 켜 소양강 도하공격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했다.20) 5월 16일 16:30경 제7사단 지 역과 마찬가지로 공격준비 사격을 실시했고, 17:30경 내평리 일대에서 공격을 개 시한 것으로 확인되었다.21) 정면에서 중공군의 파상공격이 계속되고 인접 한국군 제7사단의 퇴각으로 후방이 노출되어 고립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5월 17일 03:30경 철수명령을 하달했다. 한편, 중공군 제12군 제31사단은 5월 16일 23:00경 한국군 제5사단 제35연대의 일부를 돌파한 후 우회, 종심기동을 실시하여 5월 16일 24:00경 자은리 북쪽 삼거 리까지 진출했다. 자은리에 도착한 중공군은 2개 연대규모로 계속 진출한 후 자 은리 남쪽에서 장수원 일대로 진격하려 했다. 그러나 이때 중공군 제31사단은 미 제2사단 제23연대의 탱크 12대를 만나 격전을 벌인 뒤 차후 작전방향을 재선정하 지 못하고 자은리 일대에서 2시간을 지체하게 되었다. 또한 제5사단의 예비였던 제36연대는 장남리, 가마봉을 연하는 선에서 신장된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매봉일대에서 5월 16일 대략 3~5시간, 가마봉 일대 에서 5월 17일 대략 9~10시간을 중공군과 교전하여 중공군의 종심기동을 지연시 켰다. 이러한 지연은 결과적으로 중공군 제5차 제2단계 공세의 포위 소멸계획의 핵심인 중공군 제31사단의 주력 진출을 저지하는데 기여하였다. 중공군 제12군은 이틀에 걸친 강력한 야간공격에도 불구하고 제5사단이 저지진 지를 점령하고 지연전을 펼치며 선전하자 목표22)달성에 차질을 입게 되었다. 제5 사단(제36연대)은 미 제10군단의 항공화력과 미 제2사단 제9연대의 포병지원을 받아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친 끝에 5월 19일 15:00경 중공군의 공세를 막아냈 다. 한국군 제5사단의 승리는 미 제2사단이 인제-홍천 축선과 ‘벙커고지 전투’23)로 20) 中國人民志願軍第十二軍編, 『中國人民志願軍 : 第十二軍戰史』(1965), p.13. 21) 中國人民志願軍第二十七軍編, 『中國人民志願軍 : 第二十七軍戰史』(1955), p.37. 22) 중공군 제12군의 목표는 자은리, 장수원 등을 차단한 후 속사리로 종심기동하고 이 일대 를 차단하여 포위 소멸의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23) 미 제2사단 제38연대 제3대대는 778고지 전체에 걸쳐 견고한 엄체호를 구축하였다. 이를 시찰한 미 제8군사령관이 ‘미 제10군단에서 가장 견고한 방어진지’라 언급하면서 778고지 는 ‘벙커고지’로 불리었으며, 후일 이 곳에서의 전투가 ‘벙커고지 전투’로 불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