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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군사사및기타 군사연구 제127집 237 개전 이후 2년 동안 독일이 활약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경쟁시대인 오늘날 독 일은 재정, 학술, 인재교육에 힘썼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상업과 실업, 문명의 발달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30)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은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한인들에게는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들이 었다. 나라가 부하고 백성이 평안한 복락은 반드시 실업으로 좇아 생기나니 우리가 이 때를 당하야 생존문제를 순서대로 해결코자할진데 실업을 먼저 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노라.31) 독립전쟁담은 태평양 연안이 중심지가 되어 여러 해 전부터 독립전쟁을 창도하 였으나 군비저축문제가 한두 번이 아니오 군사교육을 실제로 시험한 일도 없지 아니하니 이만하면 국가의 독립을 위한 정성이 적지 않다고 말할지라 그러나 지 금에 군비를 얼마나 저축하였으며 군인을 얼마나 양성하였으며 각처에 세력을 얼마나 확장하였으며 일찍이 한 군사라도 써본 일이 있느냐...(하략)32) 위의 내용처럼 미주한인들의 시각은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역량을 갖추어 야 하며, 군사를 도모하는 문제 역시 자본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실 업이 흥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수년 전부터 있어 왔던 독립전쟁론을 실 현시키기 위해 군사양성 노력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재정적인 문제에 부딪혀 성 과를 내지 못했다는 자성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러한 시각은 대한제국 시기부터 있어왔던 교육, 식산, 정치 등을 강조했던 실 력양성론과 사회진화론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한인들이 보고자 했 던 독일에 대한 긍정적인 면모는 전쟁의 책임과 같은 윤리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짧은 시간에 부국강병을 이루어 유럽의 여러 강대국을 상대로 동시에 전쟁을 수 행할 수 있었던 능력에 주목하고 있었다. 30) 재일유학생의 잡지인『학지광』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재일유학생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사회진화론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기업의 발달여부가 민족생존과 밀접함을 지 적하고, 문명국 수립에 성공한 독일 등과 식민지 조선을 비교하면서 산업진흥을 주장하 였다. 정혜경,「1910년대 재일유학생의 경제문제인식」,『청계사학』13, 1996, pp.566~571. 31)『신한민보』1916년 4월 13일 3면「경쟁시대의 한인의 실업」. 32)『신한민보』1916년 9월 28일 1면「독립전쟁을 어떻게 준비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