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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군사사및기타 군사연구 제127집 223 Ⅳ. 결 론 고려와 몽고는 두 차례에 걸친 일본정벌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는 기상변이에 따른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1274년과 1281년에 있었던 두 차례의 여원연합군의 일본원정 실패는 정벌규모나 그 결과에 대한 역사적 인식은 세계사적 의미를 갖 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작 중요한 당사자인 한국사에서는 그 내용이 소홀하게 취급되어 왔다. 본고는 여원연합군에 대한 한국사에서의 인식을 좀 더 부각시켜보고자 하여 우선 군사사적 접근을 시도하여 보았다. 그리하여 우 선 이 원정에서 여원연합군의 기동로에 대하여 지금까지 한국사에서 다루었던 내 용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여원연합군은 1차와 2차의 모든 원정에서 일본의 영토에 상륙하여 상당한 보병 전을 전개하였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여원연합군은 일본으로 향하 던 도중 태풍 혹은 폭풍우로 크게 실패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 실상은 치열한 전투의 과정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1차 원정에서는 지금의 후쿠오카시에 그 유적이 있는 소하라 고지를 탈환하여 다자이후 진격을 준비하던 중 기상변이를 맞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여원연합군의 기동범위가 지금의 혼슈에 있는 나카도노구니(시모노세키)에서부터 히라도에 이르는 큐슈 북쪽 해안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지역을 대상으로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2차 원정 때는 4천척 이상의 함대가 그 일대에 위협적인 무력시위를 전개하였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2차 원정 때와 같은 해상에서의 통신 미숙 으로 인한 연합작전의 실패가 얼마나 큰 패전을 초래하게 하였는가에 대한 교훈 도 살펴보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여원연합군의 일본원정에 대해서는 그 역사적 평가의 전환과 함께 군사 사적 의미에 있어서도 활발히 재론할 기회가 있기를 바라며 본고가 여원연합군의 일본원정에 대한 이해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