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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리-한계전투 발간의 의의 22 군사연구 제127집 제3장에서는 전투경과를 중동부 전선의 전황과 중동부 전선을 집중 돌파한 중공 군, 한국군 제3군단의 퇴각, 돌파구의 견부를 확보한 유엔군, 유엔군의 반격여건 조성 등으로 나누어 분석함으로써 전투상황을 입체적으로 재조명하였다. 제4장에 서는 작전적․전술적 차원의 분석을 통해 현리-한계전투에 대한 평가 및 교훈을 도출하였다. 마지막 결론에서는 6․25전쟁 기간 중 현리-한계전투가 차지하는 비 중과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전투상황의 진실을 규명하고자 노력하는 군사사 연구자들 책무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발간된 책의 주요내용과 연구성과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1. 주요내용 가. 제1장 개관 본 장은 2개 절로 구분하여 『현리-한계전투』발간의 배경과 의의에 대하여 설명 하고 있는데 자세한 사항은 본 논문 2장에서 이미 언급하였으므로 생략하고자 한다. 나. 제2장 상황평가 상황평가는 공산군과 유엔군의 상황평가와 전장환경 평가로 구분하여 분석하 였다. 당시 공산군은 평더화이11)가 1951년 5월 17일 예하부대에 보낸 전문에서 “기회가 되면 한국군을 소멸하는 것을 위주로 한다. 미군을 고립, 분산시켜 차후 미군을 소멸할 수 있는 유리한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중 동부 산악지역에서 한국군 사단들을 격멸한 후 고립된 미군을 섬멸할 수 있는 전 기를 마련한다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작 전계획이 수립된 것으로 확인되었다.12) 한편, 유엔군 지휘부는 사령관 리지웨이 장군과 미 제8군사령관 벤 플리트 장 군이 4월 11일 동시에 부임하여 안정되지 못한 상태였다. 새로 부임한 벤 플리트 장군은 1951년 5월 이전 중공군의 배치상황에 근거하여 제5차 제2단계 공세 역시 11) 펑더화이(彭德懷)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군사위원회 부주석을 맡았으며 6․25전쟁 당시 항미원조지원군(중공군) 총사령관 직책을 수행하면서 한국전쟁에 참여했다. 그는 유 엔군의 38선 북진을 저지하고 현 휴전선 부근에 전선을 고착시키는데 일조를 하였다. 전 선이 교착상태에 있던 1952년 귀국하였다가 1953년 7월 휴전협정시에는 중공측 대표로서 서명하였다. 12) 中國人民志願軍第十二軍編, 『中國人民志願軍:第十二軍戰史』(中國人民志願軍第十二軍, 1955. 12), p.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