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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연합군의 일본원정 경로에 대한 고찰 222 군사연구 제127집 그것은 어떻든 강남군과 합류한 동로군은 흑도와 다카시마의 뢰호(瀨戶)를 통 하여, 다카시마의 북단 아옹(阿翁)에서 서남단의 여뢰비(女瀨鼻)까지 5km 정도의 해역에 정박하였다. 그런데 이 일대는 마쓰우라도오라고 하여 ‘왜구’라고 불리는 일본 해적의 본거지였고, 이 해적들 또한 좋은 항구를 가지고 있어서 크고 작은 전투들이 발생하였다. 그러던 가운데 7월 30일이 되었다. 이날 저녁부터 이마리만 일대에 강한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다음날은 윤7월 1일인데, 폭풍은 다음날 저녁무렵까지 20여시간 이상 불어닥쳤다고 한다. 결국 이 일대에 정박하고 있었던 연합군의 함대는 자연 재해에 의하여 상당한 손실을 보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사에는 생환자가 1만 9천 4백명, 귀화하지 못한 자가 약 8천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21) 21) 「弘安四年日記抄」 홍안 4년 윤7월 11일 ; 『勘仲記』 홍안 4년 윤7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