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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군사사및기타 군사연구 제127집 221 사령관이 된 아탑해를 태우고 출발한 것은 6월 18일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본래 대로라면 6월 15일 전후에 일본의 잇키에서 합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1개월 이 상이나 지연이 되고 말았다. 연합군에게 있어서는 심대한 작전 차질이 빚어지게 된 것이었다. 거기다가 3천 5백척에 이르는 대선단은 하룻만에 출발을 하지 못했 다. 이들이 전부 항구를 떠나기 위해서는 3일 내지 4일이 소요했던 것으로 추정 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제가 된 것은 강남군의 군대편성이 혼합군이라 는 사실이다. 총사령관은 몽골인 아탑해이지만 장군은 한인인 장희와 이정, 그리 고 남송군이라고 하는 남인의 장군은 범문호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실제 수 군장수라고는 범문호 정도였는데, 몽골에서는 남송인을 한인보다 천시하였으므로 남송인 장군 통제의 어려움이 있었다. 6월 18일에 출발한 강남군의 선봉은 6월 25일에 히라도에 도착하였다. 원사에 따르면 7주야에 이른다고 하였다. 강남군의 선단은 오도열도를 거쳐 히라도에 도 착했다. 강남군은 3천 5백척 가운데 6백척은 히라도에 상륙시켜 그 일대를 점령 하였다. 그들은 장희(張禧)를 주장으로 한 한인이었다. 다른 2천 9백척은 청도수 도(靑島水道)와 진기수도(津崎水道)를 통하는 이마리(伊万里) 만(灣)에는 다카시 마가 가로 놓여 있어 자연적인 방파제 역할을 하게 된다. 다카시마는 동서 5km, 남북 13km의 가늘고 긴섬으로 일비수도(日比水道)를 사이에 두고 동송포반도로, 청도와 진기의 양 수도를 사이에 두고 북송포 반도에 접해 있다. 아탑해의 본대는 이마리만으로 들어가, 다카시마의 남방해역에 정박하였다. 아 마도 같은 섬의 동쪽의 신기빈(神崎浜)에서 서쪽의 선당진(船唐津)에 이르는 넓 은 해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렇게 하여 강남군은 히라도의 고강만(古江灣)과 박 향만(薄香灣)에 6백척, 이마리만의 다카시마 해역에 이천구백척과 둘로 나누어 출 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강남군은 히라도와 다카시마 부근으로 진출하여 잇키를 출발한 동로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남군이 히라도에 도착한 시기는 6월 25일이고, 동로군이 잇키를 출발하여 합 류한 시기는 7월 27일이다. 거의 한달 가량의 시간이 차이가 난다. 잇키와 히라도 는 직선거리로 52km로 순풍이면 1일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므로 상 당한 의문이 생긴다. 이 1개월을 두고 혼성군의 지휘체계의 미숙 등이 꼽히기도 하고, 연합군이 전투보다 대함대의 위세로 일본을 제압하기 위하여 시일을 필요 로 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20) 20) 이에 대하여 일본학계의 주장은 일본군의 추격전이 잇키에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주장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