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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연합군의 일본원정 경로에 대한 고찰 212 군사연구 제127집 참고 잇키와 하카다는 해로 65킬로미터의 거리이다. 다음 날인 15일 아침 일찍, 연합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 전투에서 연합군은 성을 소각하고 방어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평경륭은 전사하고, 나머지 생존자들은 전사하였다. 연합군은 쓰시마와 잇키를 점령함으로써 대한해협의 제해권을 장악 하게 되었던 것이다. 잇키의 점령후, 연합군의 선단은 10월 16일에는 큐슈의 서북 해안인 희젠(肥前) 지역을 향하여 나아갔다. 연합군이 잇키에서 바로 가까운 하카타가 아닌 서북해 안의 희젠 연안지방으로 향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아직도 명 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마쓰라토(松浦党)와 관련지어 이해하려는 경향도 있 다. 그 설에 따르면 현재의 사가(佐賀)현과 나가사키(長崎)현에 속한 해안 일대는 이마리(伊万里)를 근거지로 한 마쓰라토(松浦黨)라고 하는 해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일대는 마쓰라토의 근거지와 같았는데, 마쓰라토는 고려의 해안을 가끔 범접 하기도 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고려는 먼저 마쓰라토의 공격을 하려고 했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추정하는 견해가 있는 것이다. 마쓰라토는 왜구와 밀접한 관련 을 갖는 해적으로 그 피해가 많았던 고려에서 이들을 급습하기 위해서였다는 설 이다. 이 설에 따르면 연합군은 마쓰라토를 공격하기 위하여 희젠지역으로 향했 고, 이 일대의 다카시마(鷹島)를 비롯한 키타마쓰라(北松浦)와 입야반도(入野半島) 를 공격하였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10) 희젠의 서북지역을 공격한 연합군은 19 일 이른 아침부터 다음 목표인 하카타를 향하여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희젠의 이마리에서 하카타까지는 해로로 약 60여킬로미터 정도이다. 순풍이라 면 그다지 많은 시간을 요하지 않는다. 연합군은 19일 오후부터는 하카다만과 가 까운 이마쓰(今津)만에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마쓰만에 모습을 드러낸 연 합군의 선단(船團)은 우부원수(右副元帥) 홍다구(洪茶丘)가 인솔하는 부대로 알려 져 있다. 이들은 후속부대를 기다리며 하카타만의 지형을 정찰하고 상륙지점을 선정하기 위하여, 홍다구부대는 먼저 수천명의 군사를 상륙시켜 메이노하마(姪ノ 浜)까지의 연안을 확보하였다. 당시 일본은 하카타를 중심으로 방어하고 있었으 므로, 이 일대로 전진하는 연합군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군사를 보내는 수밖에 없 었다. 그러나 하카타에서 보낸 군사들은 전투를 벌였으나 바로 물러나고 말았다. 일본의 군사들은 실견천(室見川)까지 나와 연합군과 전투를 벌였지만, 간단히 10) 이전까지 연합군의 희젠지역 공격에 대해서는 부정하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으나, 현재는 이 설을 인정하는 경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