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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연합군의 일본원정 경로에 대한 고찰 210 군사연구 제127집 렇게 함으로써 세계사적 대사건이었던 연합군에 대한 당사국의 하나인 우리나라 에서도 그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대세 계사의 중심부에는 고려가 있었고, 고려의 역할은 전황에 있어서 매우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고찰은 한국사를 자국사의 입장에서만이 아닌 다양한 측면에서의 해석을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Ⅱ. 제1차 여원연합군의 기동로 및 전투지역 제1차 연합군의 구성과 일본원정의 배경에 대해서는 이미 국내 학자들에 의해 서 소개된 바가 있다.5) 따라서 본고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상세히 논하지 않겠 다. 단지 이들의 기동이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었는가와 그 귀환과정에 관 하여 살펴보고자 한다.6) 1274년(문영 11) 10월 3일, 연합군을 실은 900척의 군선은 합포(合浦, 마산)를 출발하였다.7) 그리고 2일 뒤인 10월 5일 오전 2시경에 쓰시마(對馬島)에 도착하 였다. 그리고 쓰시마8)에서 이들을 발견한 것은 오후 4시경이었다. 여원연합군이 도착한 곳은 쓰시마의 서쪽 해안에 있는 사스우라(佐須浦, 현재의 小茂田浜)였다. 이때 쓰시마의 슈고다이(守護代)는 58세의 노장 종조국(宗助國)이었다. 대마도의 슈고다이 종조국은 이 사실을 다자이후(大宰府)에 알리고 자신은 80여 기를 이끌고 5) 이에 관한 기존의 연구성과로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朴亨杓, 麗蒙聯合軍의 東征과 그 顚末, 史學硏究 第21號, 1969. 李銀圭, 元의 日本征伐 考察, 湖西史學 第1輯, 1972. 金澈珉, 元의 日本征伐과 麗·元關係, 建大史學 第3輯, 1973. 채상식, 麗·蒙의 일본정벌과 관련된 외교문서의 추이, 韓國民族文化 9, 1997. 南基鶴, 중세일본의 외교와 전쟁-몽골의 일본 침략을 소재로-, 東洋史學硏究 80, 2002. 南基鶴, 蒙古의 日本 侵略과 日本의 對應, 몽골의 고려·일본 침공과 한일관계, 景仁文化 社, 2009. 6) 본고의 작성에 크게 도움을 얻은 자료는 白石一郞의『蒙古襲來』(日本放送出版協會, 2001) 이다. 그리고 본고에서 인용하는 원문 관련 자료는 『日本古中世高麗資料硏究』(張東翼,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에서 인용한 것임을 밝혀 둔다.(다음에 인용시에는 장동익과 쪽수 만을 밝히도록 한다.) 7)『고려사』 충렬왕 즉위년 10월 을사. 8) 본고에서의 일본어 독음은 확실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한글식 한자어로 하였다. 그 까닭 은 본고에 나오는 일본어의 상당수가 확인하기 어려운 지명이라서 고유한 일본어로 읽어 주기에 따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