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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사의 중요성과 학습방법 196 군사연구 제127집 Ⅲ. 군사사의 상아탑 정착 군사사는 역사를 각 분야별로 전문화하기 오래전부터 역사의 주류를 형성할 정 도로 본래 인기가 높았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 도토스의『역사』와 투키디데스의『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들 수 있다. 이 두 고 전은 각기 페르시아전쟁과 펠로폰네소스전쟁을 다룬 군사사였다. 그러나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학문이 전반적으로 크게 발전했음에도 불구하 고 군사사는 되레 학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현상이 나타났다. 그렇게 된 주 이 유는 역사가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다른 분야의 역사, 즉 정치사, 외교사, 사상 사, 문화사 등에 쏠리고 군사사에 대해서는 별로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당시 시대 조류가 군사사를 전공하면 마치 전쟁주의자로 낙인찍힐지 모른 다는 잘못된 선입견이 널리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 역사학계에서는 처음으로 군사사 연구에 관한 논의를 지피기 시작 했다. 선구자는 영국의 케임브리지(Cambridge) 대학의 포테스크(J. W. Fortescue) 교수로서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이었던 1913년에 처음으로 군사사(Military History)란 이름으로 교과목을 개설하여 군사사의 중요성과 정의 및 범위 등을 강의하였다.2) 이때 포테스크는 군사사에 대하여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전쟁과 교전 의 역사”, “무장집단의 충돌로 표출되는 공동사회의 투쟁의 역사”, “공동사회와 국가의 대외적 치안의 역사” 등 여러 가지로 설명하였다. 그는 그 시절까지 군사 사는 주로 군인들을 위한 전쟁사로 끝났으나 전쟁은 국가와 민족의 모든 에너지 를 쏟아 붓는 최고의 시험장이 되어 왔으므로 이제 군사사는 군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시각을 광범위하게 포함하는 연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군사사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종래의 군사사, 즉 주로 군인들의 주 관심영 역에 속한 전역, 전투, 전략, 전술, 전쟁의 원칙 등을 위주로 설명해온 군사사를 보다 더 업그레이드시키기를 바라며 상아탑 내에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실시할 것 을 제안하였다. 그의 제안은 일부 동조자들의 호응을 얻는 데 성공했으나 곧바로 큰 바람의 학풍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2) John W. Fortescue, Military History(London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