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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갑주의 특성과 유성룡 갑주 186 군사연구 제127집 하지 않고 은거하였다. 1604년 호성공신 2등에 책록되고 다시 풍원부원군에 봉하 여졌다. 2. 전존 경위 서애 유성룡 선생의 종가인 충효당(忠孝堂)은 평생을 청백하게 지내신 유성룡 이 삼간 초려에서 별세한 후 문하생과 사림이 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졸재 원지 공을 도와 창건하였으며, 그 후 증손 익찬 선하공이 확장, 중수하였다고 전한다. 보물 4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충효당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충효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던 서애의 유 언에서 따온 당호이다. 조선시대 중기의 대표적인 사대부 집으로 현재 52칸이 남 아있으며 전서체의 충효당 현판은 당대의 명필인 미수 허목 공의 친필이다. 서쪽을 앞면으로 긴 행랑채를 두고 안쪽으로 ㅁ자 모양의 안채와 一자형의 사 랑채가 연이어 있다. 충효당 사랑채를 돌아 뒷마당으로 가면 서애와 관련된 유물이 전시된 영모각이 있다. 단아한 기와집의 뒤뜰에 단을 높인 시멘트 건물이다. 1966년에 건립하였고 당호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쓴 글씨체가 돋보이나, 가로로 쓴 것이 흠이다. 영모 각 안에는 풍산유씨가에 전해 내려오는 귀중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서애가 임진왜란 때 일을 기록한 ‘《징비록》(국보 152호)’이 있으며 그밖에 《진사록》,《군문등록》,《침구요결》,《관화록》등 문서 19권이 보물 160호로 일괄 지정되어 있다. 또 유성룡이 생시에 쓰던 갑주, 가죽신, 갓끈 등도 보물 460호로 지정되어 전시되고 있다. 이들 유물들은 모두 유성룡에 관계된 것인데, 크게 3종 으로 분류된다. 첫째는 유성룡이 직접 사용하던 유물이고, 둘째는 유성룡 모부인 의 곤문기(昆文記)이며, 셋째는 유성룡에게 내린 조정의 문서이다. 3. 유성룡 갑주의 형태와 특징 현존하는 조선시대 찰갑 유물은 동래읍성 해자의 찰갑과 유성룡이 도체찰사 시 절에 착용했다고 전해지는 갑주뿐이기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 갑옷의 구조와 특 징을 밝힐 수 있는 소중한 유물이다. 갑옷은 손상이 심하여 현재로서는 원래의 갑옷 구조를 알기 어려우나 각각의 갑편(甲片)과 갑편들의 연결이 담고 있는 정 보를 수집 분석한다면 당시의 모습에 근접할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