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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군사관리 군사연구 제127집 163 옷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으며36) 결국은 17ㆍ18세기로 접어들면서 의전용이 나 지휘관의 지휘복화되어 가는 추세였다. 그리하여 점차 투구는 장식이 화려해 지고 따라서 갑옷은 속미늘이 제거되며 두정(豆釘)만이 부착되고 있음은 이러한 추세를 집약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37) 2. 조선시대 갑주의 전존실태 조선시대의 유물 중 널리 알려진 각종 갑주를 두석린갑주, 두정갑주, 피갑주, 쇄자갑주, 면갑주, 흉갑 등으로 나누어 종류별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문헌상으로는 알 수 없었던 갑주의 실제적인 모습을 확인하고자 한다. 【표 1】국내ㆍ외 갑주 전존 실태38) 구분 명 칭 국내 ㆍ 외 구분 및 수 량 비 고 출 토 전 존 해 외 계 1 철 갑 주 10 18 7 35 傅存革製 4점 포함 2 철제단갑 3 3 1. 함양상백리 1점 2. 고령 지산동 1점 3. 부산 동래 1점 3 금동경갑 2 2 1. 대구달서 제38호 2. 천마총 고분 4 은제경갑 1 1 경주98호 고분 5 경 번 갑 1 1 정지장군 6 쇄 자 갑 1 1 창덕궁 소장 7 두석린갑 2 1 3 8 두 정 갑 11 3 14 9 피 갑 2 6 10 흉 갑 2 1 3 11 면 갑 3 3 12 찰 갑 1 1 유성룡 갑주 동래성 해자 출토 찰갑 計 17 43 14 74 36) 《승정원일기》682책 영조 5년 4월 8일 “束伍軍裝服色 不成模樣”. 37) 鄭忠信(1576~1636) 장군의 두정갑이나 이충무공의 5대손 이봉상(1676~1728) 장군의 갑 옷은 그 속 편찰이 없는 두정갑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38) 단, 출토 유물 중 형태가 완전치 못한 것은 본 통계에서 제외(이강칠,〈한국의 갑주〉 《석주선교수 회갑기념 민속학론총》, 동기념논총간행위원회, 1971, p.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