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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갑주의 특성과 유성룡 갑주 162 군사연구 제127집 ① 수은갑(水銀甲) : 쇠로 미늘을 만들고 수은을 붓고 붉은 가죽끈을 사용하여 엮어 만듦. ② 유엽갑(柳葉甲) : 그을린 사슴가죽[鹿皮]을 엮어 만들고 검은칠을 하여 만듦. ③ 피 갑(皮 甲) : 생돼지가죽[生猪皮]으로 미늘을 만들고, 그을린 사슴가죽을 엮어 만듦. ④ 쇄자갑(鎖子甲) : 철사로 만든 작은 고리[小環]를 서로 꿰어서 만듦. ⑤ 경번갑(鏡幡甲) : 쇠미늘[鐵札]과 쇠고리[鐵環]를 사이사이 하여 엮어서 만듦 ⑥ 두정갑(豆釘甲) : 철편과 함께 푸른색 옷이나 붉은색 옷에 점점이 광두정(廣 豆釘)을 박아서 만듦. 이들 갑옷 중에 철을 소재로 하여 만든 쇄자갑과 경번갑을 제외하면 만드는데 반드시 피혁이 필요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갑옷은 크게 전쟁터에서 입을 때와 실전을 대비하여 훈련할 때에 그리고 의식을 행할 때 착용하였으며 갑옷의 착용대상은 변방의 유방군 및 수성군, 수문 장, 내금위, 충의위, 별시위, 총통위, 보갑사, 당상관, 병조판서 등이 사료상 확인 이 되며 그 외에도 무위를 나타낼 필요성이 있을 때 왕과 관료들 그리고 왕의 친 위군은 갑주를 착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러한 갑주는 조선시대의 무기체계 및 전술이 변화ㆍ발달함에 따라 그 현실적인 효용성이 떨어져가고 있었다. 세종대 이래 일발다전법(一發多箭法)의 성 공이나 대형화기인 천ㆍ지ㆍ현ㆍ황자총통과 그리고 문종대의 火車의 발전으로 무 기체계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선조대에 접어들어 임란을 거치면서 무기체 계는 더욱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던 것이다. 예컨대 승자총통ㆍ소승자총통ㆍ소 총통ㆍ조총 등이 그것이다. 한편 1593년(선조 26) 9월 13일에는 이순신이 조총을 제조ㆍ보급하였고,34) 특히 행주산성전투에서 권율은 전라소모사 변이중으로부터 화차 40량을 지원받아 대승을 이끌어냈다는 사실35)을 종합해 볼 때 당시 무기제 조 기술 발전과 그에 따른 전술의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점차 무기체계가 발전을 거듭함에 따라 이제까지 개인 방호장비로써 의 갑주는 실전장비로써의 효용성이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개인장비로써 갑 34) 이강칠,〈조선 효종조 나선정벌과 피아 조총에 대한 소고〉《고문화》10 한국대학박물관 협회, 1982. 35)《望菴先生文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