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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군사관리 군사연구 제127집 161 조선시대의 갑주는 형태나 소재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누어지고 있다.28) 갑 옷의 소재를 살펴보면 이 중에서 갑옷으로 사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재료로는 겉 은 모직물이고, 심지로는 솜을 넣는 것으로, 《성호사설(星湖僿說)에 다음과 같이 언급되고 있다. “사람이 완전한 준비를 하지 못하여 혹 추운때에 두터운 솜옷이 속까지 젖으면 얼어 죽을 것이 틀림없으므로 군대에는 모직물로 만든 옷이 좋다. 이는 비를 막 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철갑 옷과 철 투구는 탄환을 방어하는 데는 편하지만 보졸 (步卒)에게는 불편하다. 그러므로 솜이 제일인 것이다. 따뜻하고 폭신하며 또 비 를 막고, 탄환을 막는데 좋으니 알지 않으면 안된다.”29) 이는 즉 모직물을 겉감으로 쓰면 비에 잘 젖지 않고 따뜻하며, 솜은 심지로 넣 을 경우 따뜻하여 겨울에 춥지 않을 뿐더러 방어용으로도 훌륭하며 다른 비단이 나 철, 두석(豆錫)과 같은 재료보다 비용이 덜 들어 경제적인 때문도 있었을 것으 로 생각된다. 또한 갑옷의 소재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던 것은 종이를 들 수가 있다. 지갑은 미늘[札]은 종이를 접어서 만들고, 사슴가죽으로 엮어서 흑칠을 하 여 제조하였으며,30) 후에 길이가 짧고 소매가 좁은 형태의 갑적고리(甲赤古里)는 두터운 종이를 소금물에 네댓 번 담그는 과정을 거쳐서 제조되었다.31) 고종 연간의 병인양요(1866) 이후에는 면갑(綿甲)이 제작되었다. 이는 면포에 풀솜[細綿]을 몇 겹으로 겹쳐 누빈 후 소총 탄환을 방어하게 한 것으로 일종의 방탄복을 제작한 것이다. 실제로 이를 시험해 본 결과 열두겹의 두께를 탄환이 관통치 못하였고 결국 열세겹의 면갑이 제작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를 착용하 고 훈련이나 실제전투에 임할 때 사지를 움직이기에 극히 불편하였고 여름철의 경우에는 더위에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실효는 매우 미미한 것이었다.32) 이 러한 지갑이나 면갑 이외에 조선시대에 사용됐던 각 종류의 갑옷의 제작방법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33) 28) 남한산성에 수장해놓은 갑주는 이 시기 갑주의 효용성 저하와 경비부담으로 인하여 제대 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었다.(《 남한지 》 군물) 29)《성호사설》권13, 인사문. 30)《국조오례의》오례, 군례서례, 병기. 31)《성종실록》22년 5월 기묘. 32) 李能和,《朝鮮基督敎及外交史》. 33)《世宗實錄》卷 123, 五禮儀, 兵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