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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갑주의 특성과 유성룡 갑주 158 군사연구 제127집 만곡종장판주는 고구려 토착계의 투구로 출토유물을 통해 보면 좁고 긴 철판을 S자형태로 구부려 투구의 틀[冑體]을 만드는데 투구 정면에는 끝이 삼각형으로 돌출된 중심 위치를 나타내는 미간(眉間)부에 철판이 있고 이 미간부의 철판을 중심으로 좌우에 철판을 안쪽으로 대어 가죽끈을 이용하여 엮어 나갔다. 투구의 정상은 작은 복발을 얹었고 전후좌우에 쌍각 장식을 하고 간주를 세우고 흑모로 장식하였다.17) 이것 역시 아래에 수미가리개와 볼가리개를 달았다. 관모형복발주는 통구12호 분에서 보면 찰갑을 입고 투구를 쓴 무사의 투구가 방형의 소찰로 되어 있으며 복발로 상부를 덮고 있어 관모형복발주로 보인다. 충각주는 앞부분은 배의 앞부분과 같이 각을 이루었고 측면에서 보면 산모양으 로 되어 있어 화살이 전후로 피해가도록 만들었다. 나. 고려시대 고려시대의 갑옷은 고구려벽화나 신라 고분에서 출토되는 철갑, 마갑 등 상 당히 진보된 군복이 오랫동안의 숭문비무(崇文卑武)의 사조와 더불어 이는 퇴화 일로였다고 볼 수 있다.18) 고려사 흥복지(興服志)에도 의갑, 철갑, 의백갑, 백갑두 모(白甲兜牟), 의주갑(衣朱甲), 자갑(紫甲) 등 많은 유별을 볼 수 있으나 관계가 높으면 거의 복두공복(複頭公服)을 하고 있어 여기서도 숭문비무의 습속을 엿볼 수 있다.19) 현재 전해지는 이 시대의 갑옷 유물로는 정지(鄭地)장군이 착용하였던 경번갑 (鏡幡甲)이 있다. 이 경번갑은 총 길이 70㎝, 가슴둘레 79㎝, 소매길이 30㎝로 세 로 7.5∼8㎝, 가로 5∼8.5㎝의 철판에 구멍을 뚫어 철제 고리로 연결하였다. 앞면 에는 철판 6조각을 한 줄로 연결한 것이 6줄이 있고 그 중 두 줄은 여미게 되어 있고, 뒷면은 7조각을 한 줄로 연결한 것이 5줄로 등을 가리게 하였다. 어깨와 팔 은 철판없이 고리만을 사용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갑주는 중국ㆍ일본ㆍ몽골 등에서도 사용되었으며,20) 14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되는 투 구가 2점 남아 있다. 17) 김정자, 앞의 논문, p.119. 18) 김동욱, <이조 전기 복식사 연구>, ≪한국연구원≫, 아세아문화사, 1963, p.156. 19) 유희경, ≪한국복식사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80, p.189. 20) 국립김해박물관, 앞의 책, p.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