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page

4 군사관리 군사연구 제127집 151 Ⅰ. 머 리 말 인간이 의복을 착용한 동기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가운데 기후변화와 외부 영향으로 인한 신체보호와 장식을 위해 착용하였다. 신체를 방호하는 것 중 외계 로부터의 상해(傷害), 즉 적의 무기로부터 자기의 몸을 보호하는 것은 매우 중요 하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전쟁이 없었던 시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전시의 적 의 무기로부터 신체를 방호(防護)하는 것은 인류 공통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방어 용 무기의 일종인 갑주(甲冑)를 착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요컨대, 갑주는 전쟁시 에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의례시에는 위엄을 나타내며, 훈련시에는 유사시에 대비해 신체를 단련하기 위하여 착용하였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갑옷이라 한다면 찰갑(札甲 : 비늘갑옷)이라 할 수 있다. 《세종실록》오례의에는 작은 철편이나 가죽편을 가죽끈으로 엮어서 만든 갑옷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찰갑은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의 찰갑과 기본 구조는 동일 한데, 쇠나 가죽으로 만든 타원형의 방호재 표면에 상하좌우 각각 2~4개의 구멍 을 뚫고 이를 가죽끈을 이용해 가로 방향으로 먼저 엮은 뒤 다시 이를 세로 방향 으로 연결하여 완성한다. 조선 전기의 찰갑으로는 수은갑과 유엽갑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조선시대의 찰갑 유물은 유성룡 갑주가 유일하다고 하겠다. 유성룡 갑주는 경북 안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서애 유성룡(柳成龍 : 1542∼ 1607)의 종손가에는 유성룡이 직접 사용하던 유물들과 함께 전해오고 있다. 갑주 (甲冑) 1구, 혁화(革靴) 1족, 상아홀 1개, 갓끈 4종, 관자 2종, 유서통 1개, 동국지 도 서애 선생 수택본 1점 등이 그것인데, 현재 이 유물들은 모두 종손가의 유물 전시관인 충효당의 영모각에서 일반인들에게 전시하고 있다. 전해오고 있는 유물 모두가 귀중한 문화재이지만 특히 갑주는 조선 중기의 갑주의 양태를 가름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갑주는 일종의 찰갑이라 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어떠한 유사한 유물도 없다. 최근 임진왜란 당시 치열한 격전지였던 동래읍성의 해자(垓字) 유적에서 조선 시대 찰갑이 거의 원형 그대로 발견됐다. 백제 유적인 몽촌토성에서 쇠뼈로 만든 찰갑이 출토됐고, 다른 지역에서도 찰갑 조각이 발견된 적은 있으나 온전한 형태의 조선시대 찰갑이 출토된 것은 처음이다. 이 찰갑은 철로 만든 미늘을 물고기 비늘 처럼 촘촘히 붙여 만든 것으로,《세종실록》에 보이는 찰갑과 동일하다고 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