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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전 쟁 사 군사연구 제127집 123 실제적으로 유엔군의 제1차 반격은 서부지역에서의 썬더볼트 작전과 중동부지역 에서의 라운드업작전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반격작전을 준비하기 위하여 울프하운드 작전을 실시한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반격작전에서도 위력수색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반격작전은 리지웨이 장군이 지금까지 중공군이 실시한 제1, 2, 3차 공 세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바탕으로 중공군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 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에 리지웨이 장군은 중공군이 1950년 12월 31일 실시한 제3차 공세로 국군과 유엔군을 37도선까지 밀어낸 후 약 20일 멈춘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에 리지 웨이 장군은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한 이후의 제1, 2, 3차 공세를 분석하였다. 중공군의 제1차 공세는 10월 25일에 시작되어 11월 1일 청천강으로 철수한 유 엔군의 추격을 중단함으로써 종료되었고, 이때의 공세기간은 8일이었다. 제2차 공 세는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 직후인 11월 25일 야간에 시작되어 12월 2일 중 공군이 추격을 중단할 때까지로서 공세기간은 8일간이었다. 이어서 제3차 공세는 12월 31일 시작되어 1월 7일 중공군이 진격을 중단할 때까지 역시 8일간 실시되었다. 이와 같이 중공군은 8일 동안 아군의 전선을 돌파 후 계속 밀어붙여 전과를 확 대해야 할 결정적인 시기에 공세를 멈추었다. 그리고 일정기간 쉬었다가 다음 공 세를 하였다. 즉 리지웨이 장군은 “8일”이라는 의미와 한차례의 공세가 끝나고 다음의 공세는 대략 1개월 정도의 기간을 두고 반복되는 이유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그 결과 리지웨이 장군은 중공군의 ‘보급체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당시 중공군의 보급능력은 유엔 공군의 후방폭격으로 심각하여 전투병이 휴 대할 수 있는 식량, 탄약 등의 보급품은 1주일분을 초과할 수 없었다. 따라서 중 공군의 기동부대들은 최초에 지급된 보급물자로 전투를 수행해야 했으며, 전투 중 재보급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기동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았다. 중공군의 약점이 확인된 것이다. 따라서 리지웨이 장군은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와 공세 사이에 대대적으로 반 격을 실시한다면, 중공군에게 차기 공세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심리적 여유를 박탈하여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때가 썬더볼트작전과 라운드업 작전이 시작되는 1월 31일이었다. 이때부터 리지웨이 장군은 자신감을 가지고 제 8군 예하의 전 부대에 적극적인 공세를 실시하도록 명령하였다. 그 결과 37도선 에서 중공군을 밀고 올라가 한강을 도하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고 중동부지역에서의 서울을 포위하여 탈환할 수 있는 유리한 상황을 조성할 수 있 었다. 그리고 리지웨이 장군의 자신감은 중공군의 차후 공세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