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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25전쟁시 유엔군의 반격 효과분석 120 군사연구 제127집 1월 31일에 미 제2사단 제23연대 전투단은 문막 - 지평리 방향으로, 기갑부대는 원주 - 횡성 방향으로 북진하여 기갑부대는 2월 2일 횡성에 도달했으며, 제23연대 전투단은 2월 3일에 지평리를 점령하였다. 그 과정에서 양 부대는 4일 동안 적의 경미한 저항만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기갑부대가 횡성에서 홍천을 향해 북상하자, 적의 저항은 완강하였다. 이에 미 제8군사령관의 복안에 따라 미 제10군단장 알몬드(Edward M. Almond) 소장은 공산군의 전략 및 전술상의 요충지인 홍천을 포위하여 적의 증원 거점을 분쇄하고 아군의 전선을 홍천 - 대관령 - 강릉선으로 북상시켜 차기공격의 유리한 발판을 확보할 목적으로 국군 제3군단과 협조된 공격을 계획하였다. 작전의 명칭은 “적의 주력을 몰아서 섬멸한다”는 의미의 라운드 업(Round Up)작전으로 명명하 였다. 군단장은 국군 제8사단을 서측에서 주공으로, 국군 제5사단을 동측에서 조공으 로 한 2개 사단 병진(竝進)으로 홍천을 포위 공격케 했으며, 예비인 미 제2사단과 제7사단은 지평리 - 횡성 - 원주 일대의 방어진지를 점령하여 공격중인 국군 2개 사단을 지원하도록 하였다. 국군 제8사단과 제5사단의 홍천 포위공격은 2월 5일 08:00에 시작되었다. 제8사 단은 횡성-홍천을 연결하는 5번 국도와 횡성 - 용두리 - 홍천을 연결하는 6번 및 44번 국도를 따라 공격하였다. 최초에는 적의 저항이 미약하였으나 5번 국도의 삼마치 고개에서 중공군 제198사단이 강력히 저항함으로써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 졌다. 이에 국군 제8사단은 삼마치 고개를 돌파하기 위해 항공지원하에 보병, 전 차, 포병의 협조된 공격을 2월 10일까지 계속했으나 실패하였다. 한편 국군 제8사단의 동측에서 공격하는 제5사단도 공격초기부터 북한군 제5군단 예하 제6사단의 강력한 저항을 받고 공격이 저지됨으로써 홍천 포위작전은 2월 10일까지도 진척이 없었다. 이 무렵 미 제10군단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홍천 남쪽 에서 적의 저항이 치열해지자, 현 병력으로는 삼마치 고개를 돌파하는 것이 어렵 다고 판단하고 국군 제3군단의 제3사단을 지원받아 주공인 국군 제8사단 지역에 투 입하였다. 그러나 삼마치 고개의 중공군은 국군 제3사단의 투입에도 불구하고 계 속 저항하면서 2월 11일 제4차 공세를 시작하였다. 한편 미 제10군단의 우측에서 공격하던 국군 제3군단은 적의 산발적인 저항을 물리치고 평창 북방의 창동까지 진출하였다. 또한 동해안의 국군 제1군단은 2월 7일에 대관령-강릉을 연하는 선까지 진출함으로써 동해안의 요충지를 탈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