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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25전쟁시 유엔군의 반격 효과분석 118 군사연구 제127집 한편 서측의 미 제25사단은 도로에 매설된 대전차 지뢰를 제거하면서 영등포와 인천으로 진출한 후에 김포비행장과 김포반도로 진출하였다. 이때 이 지역을 방어 중이던 북한군 제1군단은 저항을 포기한 채 결빙된 한강을 도하하여 퇴각하였다. 썬더볼트작전은 전술적, 작전적, 전략적 차원에서 효과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술적인 차원에서 이 작전의 효과는 반격준비에서 반격으로 과감히 전환 하여 적 부대를 격멸한 것이다. 이 작전은 유엔군의 마지막 공세였던 11월 24일 의 크리스마스 공세 이후에 2개월만의 공격작전으로서 리지웨이 장군은 “나는 부 동산(지형 탈취)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적 병력을 죽이는 것(적 부대 격멸)이 목적이다”고 강조하여 부대격멸에 주안점을 두었다. 따라서 그는 이제까 지의 공격방식이었던 ‘도로를 따라 전진하는 방식의 작전’을 탈피하고 전선을 완 전하게 연결하여 협조된 상태에서 전진하도록 하였다. 또한 선정된 5개의 통제선 에서 적을 우회함이 없이 완전히 섬멸하였다. 둘째, 작전술 차원에서 이 작전의 효과는 서부전선에서의 한강도하를 위한 교 두보를 확보함으로써 차후 작전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한 것이다. 이 작전 결과 유엔군은 한강도하의 교두보를 확보했으므로 이제는 서울을 언제 탈환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지웨이 장군은 유엔군의 전력이 중공군에 비하여 월등히 우세하지 못한 상황하에서 “서울을 점령하는 것은 군사 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미약한 전투력을 강북에 배치할 경우에 배후의 한강이 ‘배수지진(背水之陣)의 형태’가 되어 불리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따라서 서 울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부지역의 전선을 양평-홍천을 연하는 선까지 북 상시키고 이어서 남양주 - 가평선을 점령함으로써 서울의 동측방을 포위한 후에 한강을 도하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전선은 서부지역에서 중부지역으로 옮겨지게 되었으며 한강변의 국군과 유엔군은 한강선에 정지하여 전력을 정비하면서 서울 탈환을 서두르지 않기로 하였다.12) 셋째, 전략적인 차원에서 이 작전의 효과는 중공군이 장차 부대정비 및 재편성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심리적 여유를 박탈하여 다음 공세 준비를 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중공군의 지휘부는 유엔군이 썬더볼트작전을 시작한 1월 25일부터 29일까지 평 안남도 성천군 군자리에서 개최한 중국과 조선 양국 군 고위간부회의에서 차후작 전 방향을 논의하였다. 이 회의에서 유엔군의 공세는 2월에 가능할 것으로 판단 12) 국방군사연구소(채한국 외 2인), 앞의 책, pp.376~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