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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연구 제126집 243 Ⅳ. 결 론 청일전쟁의 승리로 대한제국을 독점하려던 일본의 계획은 러시아가 주도한 삼 국간섭에 의해 일시적으로 저지되었다. 일본은 명성황후의 러시아 접근정책에 불 만을 품고 1895년 4월 8일 궁정을 침입해 시해(을미사변)하는 만행을 하자 반일 의병투쟁을 야기했으나 친일 내각을 세우고 고종을 감금상태에 있게 했다. 고종은 일본의 감시를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1896년 2월 피신(아관파천)했다.이런 상황 에서 일본은 한반도 내에 지배권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자구책을 마련하게 되고 그중에 하나의 방편으로 대한제국에 대한 경제적 지위를 확실하게 굳히면서 이를 군사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대(對) 러시아 전쟁을 상정한 군비확장에 주력했다. 1904년 2월 8일 제물포에서 시작되어 1905년 9월 5일 포츠머스 조약으로 종결 된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전쟁은 식민주의 쟁탈을 위한 제국주의의 전쟁이었다. 서 양의 강대국이었던 러시아는 작은 섬나라인 일본에 대해서 얕보고 있었으나 일본 은 독일인 교관을 초청하여 독일식 군사교육은 물론 현대 무기를 다량 확보하였 다. 그리고 대한제국 문제와 만주개방 문제를 이유로 러시아의 동청철도가 완성 되기 직전에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동철철도가 완성되면 유럽에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의 대군이 몰려올 것을 염려해서였다. 일본군은 대 한제국이 러일전쟁에 중립을 선언하였으나 무시하고 이미 전쟁초기에 염려했던 것처럼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고 마치 대한제국이 러일전쟁의 동맹국인양 발표했다. 일본의 침략주의를 미리 간파한 고종과 일부 대신들은 이런 상황이 올 것을 염려해 중립국 선언을 했던 것이며 한편으로는 항일 독립운동자들은 의병으 로 나서 국권을 유지하려고 했다. 러시아군은 대세를 만회하고자 막강한 위용을 자랑하는 제2, 제3 태평양함대를 결성하여 파견했으나 일본의 동맹국 영국의 방해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없 게 되어 아프리카 남방으로 우회해 오는 동안에 1905년 1월초 러시아 태평양 함 대의 본거지며 극동총독부가 있는 여순항을 일본에 함락되고 말았다. 결국 제2, 제3 태평양함대는 여순항에 기항 할 수 없게 되어 블라디보스토크로 항해하는 중 에 5월 27일 일본해군과 쓰시마 앞 해상에서 해전을 하게 되었다. 러시아 함정은 일본 함정에 비해 전술의 부재와 유효 사거리가 짧은 구식함정으로 참패를 당함 으로써 전세를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더욱이 사회 불안이 증대되어 사기를 잃 고 있어 전쟁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처지였으므로, 러일전쟁 관전 장교단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