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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隱先生神道碑銘(序畧銘曰) 松社旣屋固多節臣卓彼松翁圃牧爲隣以道事君竭其丹衷東征西伐多立奇功望實俱隆期以公輔大厦 之傾焉用一柱密城田舍一朝賦歸椒涯盤桓只自歔欷天佑震域聖人龍興縻以好爵三四五徵五徵不就 ᅳ心自靖剗地沈淪相吊形影有書遺于忠爲要訣翛然觀化氷清玉潔定廟恩侑眷顧丁寧二字易名炳若 丹青爰及苗裔不墜遺訓曰孝曰忠代有餘韻節彼馬岳螭首峨峨彌千百禩風雨不磨 安東 金寧漢 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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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선생 신도비명(1) (서문은 생략하고 명만 쓰다) 송도(松都) 사직(社稷)이 이미 망하매 절개있는 신하가 많았다. 우뚝한 저 송옹(松翁) 은 포·목과 벗했다. 도리로 임금 섬겨서 단성(丹誠)을 다하였다. 동으로 치고 서쪽으로 정벌해서 기이한 공을 많이 세웠다. 명망과 덕이 함께 높아서 공보(公輔)로 기대하였다. 큰 집이 너머지는데 한 기둥이 어이하리. 밀성에 전사(田舍)가 있어 하루 아침에 귀거래(歸去來)했다. 산수간(山水間)에 방황(彷徨)하면서 다만 스스로 흐느꼈다. 하늘이 진역(震域)을 도와서 성인(聖人)이 용흥(龍興)하였다. 좋은 벼슬로 얽매어서 세번 네번 다섯번이나 불러도 나아가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이 스스로 조촐했다. 먼 지역에 윤락(淪落)하여서 형체(形体)와 그림자가 서로 조상(吊喪)하였다. 아들에게 남긴 글이 있었는데 충성껏 하는 것이 요결(要訣)이었다. 유연(悠然)히 선화(仙化)해서 얼음같이 깨끗하고 옥처럼 조촐했다. 정묘(定廟)께서 사제(賜祭)하시어 돌보심이 정녕(丁寧)하였다. 두글자로 명호(名號) 바꿔서 단청(丹青) 같이 빛났다. 이에 후손(後孫)에게 미치도록 남긴 훈계(訓戒)를 떨어뜨리지 않았다. 효(孝)이다 충(忠)이다가 대(代)마다 여운(餘韻)이 있었다. 우뚝한 저 마악(馬岳)에 용(螭)머리가 높고 험하다. 천백년에 뻗치도록 풍우(風雨)에 닳지 않으리. 안동 김영한(金寧漢) 삼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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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銘曰有堯舜君民之志而才足以致之有伊傳輔弼之器而德足以涖之有孔朱繼開之旨而文章足以興 起之何天之降大任於斯而不與之其時王事多難邊胡島夷薄伐奏捷爲邦家維三朝鞠躬隻手扶危大廈 將顚良匠難支頹波傾頹砥柱不移掛冠南歸士女齎咨山中甲子書無羲熙湮欝慽慨寓諸詩詞二箴垂訓 朱情孔思身顯道窮往哲收悲雖然窮矣嘉惠孔拖六經在躬上爲騎箕示我正軌百世之師箕山嚴嚴松溪 彌彌我銘穹石 嘉善大夫經筵參贊官原任奎章閣副提學 延安 李炳觀 謹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