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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조선시대에 ‘진주라 천릿길’이라는 말이 있었듯이 진 주보다 더 남쪽에 자리한 고성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말 닿기 힘든 바닷가 오지였다. 경부고속도로와 남 해고속도로를 이용한다고 해도 종국에는 구불거리 는 좁은 도로를 지나야 했다. 아무리 빨라도 서울에서 고성까지는 최 소 5시간 이상을 잡아야 했다. 그러나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개통된 지금 고성은 지척이 됐다. 고속도로만 달리면 곧바로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고성에 닿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고성을 대표하는 관광지인 상족암(床足岩)으로 향하는 길. 77번 국도 변을 따라 왼편으로 푸른 바다에 점점이 뜬 섬들이 언뜻언뜻 보였다 사라지곤 한다. 따스한 햇살을 받은 봄날의 다도해는 엄마 품처럼 포 근한 모습으로 이방인의 마음에 훈풍을 불어주었다. ‘상족암’ 이정표를 따라 바닷가 도로로 접어들자 잔잔하고 푸른 바다 가 눈앞에 펼쳐졌다. 군립공원 주차장의 공룡 모양 출입구가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인근 식당의 이름도 ‘공룡 식당’이다. 작은 포구에 는 조그만 어선 서너 척이 정박해 있고, 배들은 드나드는 파도의 움직 임에 따라 꿀렁거린다. 주차장에서 가장 가까운 제전마을 해안의 바위들은 썰물에 물이 싹 빠 져 시원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국내 최초로 공룡 발자국 화 석이 발견된 곳으로 사람들은 이곳에서 시작해 상족암 방향으로 발걸 음을 옮기며 시간 여행을 떠난다. 해안 절벽을 따라 조성된 나무 데크에서 바위를 내려다보자 물이 빠진 바위에 작은 웅덩이들이 드문드문 나타난다. 평평한 바위에는 물웅덩 이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해안선과 약간 비스듬하게 직선을 그으며 패 있다. 거대한 생명체가 걸어간 듯한 모습이다. 데크 아래쪽으로는 모 양을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는 공룡의 발자국도 군데군데 남아 있다. 1억 년 전 이곳 해안은 주변으로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이 울창한, 드 넓은 호수였다. 울창한 숲 속에서 뛰놀던 공룡들은 호숫가로 목을 축이 러 왔고, 발걸음을 뗄 때마다 호숫가 진흙에 선명한 발자국을 남겼다. 화려한 비경 속의 쥐라기 공원 진흙에 남은 발자국 위로는 이후 부드러운 퇴적물이 거듭 쌓였고, 오 랜 시간이 흐른 뒤 진흙은 바위로 굳어졌다. 드넓은 호수는 죽음처럼 긴 세월을 지나며 바다로 변했고, 그 옛날의 바위층은 몇 번의 지각 변 동으로 땅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다시 파도와 바람과 시간은 퇴적암 을 한 꺼풀씩 벗겨내 그 옛날의 발자국을 드러나게 했다. 데크를 따라 다시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내판에 적힌 ‘공룡들 의 무도장’이라는 글귀가 시선을 끈다. 촛대바위 뒤쪽의 복잡하게 뒤 엉켜 있는 듯한 추상화 같은 바위들을 두고 붙인 이름이었다. 거대하 고 육중한 공룡들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변 퇴적층에 공란층(공룡 들이 걷고 뛰면서 층리 구조가 파괴된 교란 구조)을 만들었던 것이다. 어떤 게 발자국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청소년 수련원 앞 해안을 지나면 데크가 다시 이어진다. 이제 층층이 깎아지른 절벽이 버티고 선 상족암이다. 멀리서 보아도 수려한 모습이 층암단애가 아름다운 상족암(床足岩)은 1억 년 전과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상족암의 동굴 속 바닥에는 공룡들이 머물렀던 흔적이 인주를 묻혀 찍은 지문처럼 남겨져 있다. 동굴을 지나다 보면 어둠 속 어딘가에서 공룡이 홀연히 나타날 것만 같다. 태고(太古)와 현재, 상족암에서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