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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였기 때문이며, 또 그나마 기록도 매우 소략하여 체계적인 파악 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도 가야사를 이 정도라도 알 수 있는 것은 가야고지에 남아 있는 다양하고 풍부한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당시 상황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가야에 대한 기록이 가장 많은 역사서는‘삼국 유사’의‘駕 國記’와‘ 伽 ’인데 이 삼국유사의 6가야는 김해 의 금관가야(�官伽 ), 함안의 아라가야( 伽 ), 고령의 대가 야( 伽 ), 상주 함창의 고령가야(古寧伽 ), 성주의 성산가야( 伽 , 혹은 伽 ), 고성의 소가야( 伽 ) 및 창녕의 비화가 야( 伽 ) 등이다. 이들 삼국유사에 나오는 6가야 중 낙동강 유역의 가야국을 보면 가 장 상류지역에 위치하는 것이 함창의 고령가야인데 그 곳에는 古 寧伽 이라는 대형 고분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주변에도 봉 토분을 포함하는 고분군이 여러 군데 남아 있어 소국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나 그것을 가야라고 해야 할지는 확실치 않다. 그리고 이 고 령가야를 진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어 논란이 많은 지역이므로 가 30 향토와 문화 하늘이 나에게 명하기를 이곳에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고 하였으므로 일부러 여기에 내려온 것이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산봉우리 꼭대기의 흙을 파면서 노래를 부르되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만일 내밀지 않으면 구워먹겠다’하고 뛰면서 춤을 추어라. 그러면 곧 대왕을 맞이하여 기뻐 뛰놀게 될 것이다. ─‘삼국유사’가락국기 중에서 ▲ 복원된 고령 지산동 고분군. 사진/김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