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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유역과 소국의 성장 태백산맥 남단의 함백산에서 시작하여 경상남북도의 한복판을 남북으로 관통하여 흐르는 낙 동강은 영남지방의 젖줄로써 선사시대부터 영남문화의 터전을 이루는 강이다. 특히 기원전 후 한 시기부터는 낙동강의 본류와 지류의 물길이 만들어 놓은 기름진 평야와 산으로 둘러 싸인 주변의 분지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소국( 國)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중국의 역사서인‘삼국지( 國 )’위지 동이전에 의하면 1~3세기경 한반도 중남부에는 , , 의 國이 있었는데 마한 54국은 한강 이남의 경기∙충청을 중심으로 호남 지방에 걸쳐 있었고, 진한 12국과 변한 12국은 소백산맥 이남의 영남일원에 섞여 있으나 대 체로 낙동강 동쪽에는 진한 12국이, 서쪽지역에는 변한 12국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렇게 낙동강 주변과 서쪽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던 변한 소국들이 점차 발전하여 3세기 이후부터는‘가야’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고대의 역사책인‘ 國 ’ 에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5伽 ’혹은‘6伽 ’가 자리잡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 는데 바로 이 6가야들이 앞에 말한 변한 12국과 일치되거나 비슷한 명칭들이 많아 삼국시대 ‘가야’는 변한의 소국들이 발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또한 이 가야는 일본의 역사서인‘ 紀’에는‘임나( 那) 7국’혹은‘加 10국’으로 표현되어 있고, 한국의 기본사서인‘ 國 記’에는‘가야(伽 ), 가라(加 )’등으로 기록되 고 있다. 결국 이를 종합해 보면 1�3세기 낙동강 연안에 변한으로 불리던 소국들이 3세기 이후부터는‘가야’혹은‘가라’로 불리면서 5~6 세기의 연맹체 정도로 정리되어 삼국시대를 맞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가야사는 여러 설이 분분한 가운데 전기 에는 김해의 금관가야가 연맹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가, 4세기 이후에는 고령의 대가야가 연맹을 주도하였다고 정리되고 있으나, 최초에는 대가야 는 부 체제를 갖춘 영역국가라는 설이 대두되고 있다. 이와 같이 가야사가 복잡한 이유는 가야가 신라나 백제와 같이 완전히 통합된 고대국가를 이룩하지 못하였고, 또 가야인 스스로의 자기 역 사를 기록하지 못하여 분명한 가야사를 보여주지 향토와 문화 29 신비의 왕국 가야를 찾아 낙동강 주변과 서쪽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던 변한 소국들이 점차 발전하여 3세기 이후부터는「가야」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고대의 역사책인 ‘ 國 ’에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5伽 ’혹은‘6伽 ’가 자리잡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바로 이 6가야는 변한의 소국들이 발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 고령 지산동 32�35호분 발굴 전경. 사진/계명대 박물관 ▼ 지산동 고분에서 발굴된 가야 토기. 사진/계명대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