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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능은 신라 제4대 탈해왕(脫解王, 재위 57∼80)을 모신 곳이다. 왜국(倭國)에서 동북쪽으로 1천 리 떨어져 있는 다파나국(多婆那國, 또는 '완하국', '용성국')의 왕비가 잉태한 지 7년 만에 큰 알을 낳았다. 이는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 하여 그 알을 궤에 넣어 바다에 버리니 동해 아진포(阿珍浦)에 닿았다. 그때 한 할머니가 이것을 열어 보고 어린아이가 있어 데려다 길렀다. 배에 까치들이 울며 따라왔으므로 '까치 작(鵲)'에서 '새 조(鳥)'자를 떼서 '석(昔)'으로 성을 삼았다. 석씨는 62세 때 왕위에 올랐다. 왕이 세상을 떠나자 삼국사기, 三國史記}에는 "성북(城北)의 양정(壤井) 언덕에 장사하였다."고 하였고, 삼국유사, 三國遺事}에는 "수장하였다가 뼈로 소상(塑像)을 만들어 동악(東岳)에 모셨는데 지금의 동악 대신(大神)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성북이라고 한 점이 현재의 위치와 부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