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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⑥ 99 말이다. 다른 날에 ‘너를 옥으로 만들어 주리다’라는 기약은 지금부터 시작된 것이니, 애오라지 이것으로 스스로 위로 하노라. 17일 맑음. 윤응규, 김창무가 학교에서 보러 왔다. 대구에 사 는 참봉 김준식은 우리의 족인이다. 객지에서 친지를 만난 기쁨을 펼치니 그 기쁨을 헤아릴 만하다. 인하 여 시를 나에게 보이니 더욱 감격하고 위로가 될 따 름이다. 황병우가 그대로 만류하는 바람에 묵었다. 18일 맑음. 사람을 고용하여 심은 모의 김메기를 하였는데, 벌 레들이 뿌리를 갈라먹고 새들은 쪼아대니 심은 모의 뿌리가 듬성듬성해져서 빠진 곳을 보충하여도 완성 하기를 기약하지 못하겠다. 헛되이 먼저 했던 일이 허비가 된 셈이니, 탄식할 만하다. 저녁에 의주에 사 는 이노인이 여기에 온 지 삼사 년 만에 지금 고장(故 庄)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보아하니 매우 군색하여 먹이고 재워 보냈다. 19일 비가 오지 않는 날이 없다. 북에서나 남에서나 구름과 안개가 덮이어 하늘이 침침하고 어두워졌다. 야간에는 또 크게 비가 내려 개천과 도랑이 차고 넘쳐 쌓은 보와 제방이 네 번 무 너지고 세 번 터지니, 하루 동안의 노역을 허비하였 다. 정녕 이른바 말풍(末風)이 불고 염우(鹽雨)가 내리 니, 근심스럽고 근심스럽다. 20일 비가 올 듯 하다가 오지 않음. 김대락과 거의 고뇌를 같이했던 매제 이상룡 일가의 묘(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1묘역). 왼쪽  첫 번째는 이상룡의 유해가 이장된 후 그 자리에 묻힌 의병장 권득수의 묘. 그 다음부터 이봉희 (22호), 이광민(23호), 이승화(24호), 이준형(25호), 이병화와 허은 부부(26호)의 묘이다(임재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