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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④ 99 으나 더러워 입을 수가 없다. 오후에 막 새집에 도착 했는데 주인의 온 식구가 극력 만류한다. 아마도 내 새 집이 미처 수리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벗으로서 끌리는 마음에 선뜻 보내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인하여 유숙하였다. 19일 맑음. 조반 후에 비로소 우소(寓所)에 들어가니, 창에는 종이도 바르지 않았고 방에는 가릴 문도 없는데, 얼 마나 버려둔 것인지 벽까지 무너지고 깨져 우선 거처 할 계책부터가 심히 아득하다. 박낙응과 김사용 두 사람이 손을 모아 창을 바르고 대강 거실의 모양을 만들었으나, 살림 그릇 모든 것을 일일이 다 빌려 쓰 자니 백 가지로 군색하고 천 가지로 곤란하여 처음 시작하는 살림살이 아닌 것이 없다. 21일 맑음. 주병의(朱秉懿)가 와 보았다. (울진 살던 사람이다.) 22일 이병삼이 와 보았다. 23일 맑음. 이동녕과 장유순(張裕淳)이 와 보았다. 지금 해야 할 일에 대해 비분하여 단발(斷髮)할 것을 자세히 설 명하고, 또 학교를 건립하는 일을 장황하게 계획하였 다. 아마도 이곳에 새로 우거한 사람 중에서 가장 앞 장서 일하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24일 바람. 박낙응이 항도천으로 떠났다. 25일 비 오다가 늦게 갬. 어린 손자를 데리고 추가가로 가려다가 겨우 주병 의의 집에 이르렀는데 기운이 빠지고 날이 저물었다. 그래서 되돌아오니 이동녕이 출타하였다고 한다. 26일 맑음. 장유순, 이아무개, 김아무개 등이 씬청자로 가려다 가 조금 쉬어 갔다. 점심으로 콩죽을 대접하였다. 29일 바람. 이장녕이 와 보았다.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고려대에서 경제학 · 정치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율곡 연구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 임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감사를 맡고 있다. 시대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풀어낼 지혜를 지나간 역사에서 찾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면암 최 익현 선생의 5대손이다. 필자 최진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