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page
100 • 가평의 얼과 인맥 월에는 숭정(햄IE)에 추대되었다 대종사의 수행내용은 침-선(參피펜)괴- 관(觀)무량(無量)수경 (壽經) 십육관법(十六觀法)으로 마음을 조용히 가다듬어 모든 싱념을 한곳에 모아 서쪽을 향하는 일상관( 日想願)을 위주로 한 명상과 칭 명(稱名)염불(念佛)이었다. 이러한 수행을 오 래하면 심신(心身)이 청정(淸傳)하여 신통(페l通)지혜(智慧)를 얻게 되고 아미타(1河爛院) 부 처님의 수기(授記)를 받아 무상(無上)보제(홈提)를 성취한다 이러 한 신앙과 사상은 대종사 말년에 출간(出刊)한 염불(念佛)정토삼부경(博土三部經)에 잘 나타나 있다. 대종사는 사대 (四大)가 청정(淸‘햄)하고 위의(威嚴)와 계행(成行)이 엄정했으나 사람을 대하는 데는 언제 나 안모(顧、觀)가 자비롭고 어음(語音)이 우렁치-고 인자(仁孫)하71 7} 이를데 없었다. 성품 또한 깨끗하고 고매(高週)하였으며 이사(理웰)에 소연(昭然)하여 모든 일을 법도(핑度)에 맞게 처리(處理)하고 절제(節制)와 검소(險素)한 생활을 즐겼다. 아, 희유(~有)하고 거룩하셔라! 대종사께서 서기 1998년 6월 z7일[무인(成寅)윤(潤)5월 4 일] 이른 새벽에 홀로 서울 무학산(舞歸山) 숭가사(↑曾뼈좋)를 떠나 스님께서 개산(開山)하신 이 곳 감로사(it露츄)에 당도(當到)하여 십 방( 1 -方)의 제불(請佛)보실-(홉輝)과 호명산(虎嗚山) 미륙(爛動) 부처님을 우러러 볍고는 설을 모아 그 위에 정좌(定座)히-신 뒤 삼매(三味)의 불을 일으키어 십이굉-불(十二光佛)을 염(念)하고 부르시며 그토록 십(十)수년(數年)간(間) 간절히 염원(念願)하던 소신(健身)공양(供養)을 올리셨으니 이는 한국불교계에 최초로 화중(火中)연 화(違華)를 피우신 바라 소신(燒身)공양(供養)은 스스로 몸을 태워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 가 운데 최상의 공양이다. 스스로 몸을 태워 회신(까身)멸지(滅智)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무상 (無上)대도(大道)를 성취하여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證得)하는 것이다 법화경(法華經) 약왕(藥王)보살(폼鐘)본사품(本師品)에 구원겁(久遠웰b)전(前) 일체(一切)중생(짧生)희견(喜見) 보살(홉健)께서 일월( 日月 )정명(演明)덕여래(德、如來)께 서원을 세우고 온폼에 향유(香패)를 끼 얹고 불을 붙여 소신(燒身)공양(供養)한 경전 속 미증유(未曾有)의 기적을 노사(老師)께서는 결행한 것이다. 오탁(五獨)악세(惡世)인 사파(婆꽃)세계(世界)의 모든 중생(댔生)들의 고통을 떠안으시고 단정히 결가부좌(結없l1l跳坐)한 채, 십이광불(十二光佛) 아미타불(阿爛院佛)을 평소 처 럼 염(念)하면서 폼도 마음도 청정하고 안온(安穩)하게 삼매(三味)의 불을 일으키어 무생법 인(無生法忍)을 증득(짧得)하고 대(大)열반(뿔樂)에 든 것이다. 종교의 세계는 상식을 초월하 나니 이것이 바로 종교의 본래 면목인 것이다. 삼매(三妹)에서 나온 심핵(心核)은 물질의 핵 (核)을 초월하여 팔십억(八-1-憶) 항하사(1멜河沙)세계( 世界)를 비춘다 하였다. 이 자리애서 소신(燒身)공양(供養)으로 열반(‘끊盤)하신 충담(펴1樞) 큰 스님의 원력(順力) 이 우리 한국사회는 물론 십방(十方)세계(世界)에 새로운 원력과 희망이 화광(火光)삼매(= 妹)로 화현(化現)하였으니 우리 모두 심핵(心核)삼매(三|하)의 위력(威기)을 마주하는 믿음을 내야 할 것이다 충담(뼈港) 스님이시여, 화중(火中)생연(生運)으로 피어나 사파(婆꽃)세계(世界)를 비추소서 대종사의 세수( 世壽)는 86세요, 그 법랍(法6없)은 69세였다. 이에 대종사의 거룩한 뜻과 정신 그리고 그 위력(成力)을 후세에 오래오래 기 리고 전하고자 대종사께서 소신공양한 그 자리에 부도(浮휩)를 봉안(奉安)하고 비(牌)를 세워 그 행상을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