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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사장으로 끌고 왔다. 사형장인 이곳 모래장에서 문전도사님과 함께 포승줄에 묶여 끌려갔다 극적으로 탈출한 생존자 김무학장로는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한다. "공산군은 1950년 10월 5일 새벽 3시 새끼줄에 묶인채 문전도사님을 이곳으로 끌고온 후 죽창으로 찌르고 발길로 차며, 총대로 죽음에 이를 정도로 후려치고 했었다. 그 와중에도 문전도사님은 '나를 주기더라도 박정희전도사와 성도들은 죽이지 말라"고 간청하였다. 모래사장에 끌려온지 얼마 되지않아 공산군은 '너는 반동의 씨암탉같은 존재이기에 처형한다'며 문전도사님을 창으로 잔인하게 온 몸을 찔렀지만 숨이 끊어지지 않자 숨통을 끊는다고 하며 목에다 총구를 대고 총살하였다. 순교한지 며칠이 지난뒤에도 공산군이 두려워 시신수습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지금도 생존해 있는 박복엽권사의 증언을 들여면 "터진목에서 박정희전도사님과 조동례권사, 정삼용씨, 조행선씨, 나와 같이 다섯명이 시신을 소무등으로 옮겨 물을 떠다가 시신을 씻기면서 보니 온몸이 피로 물들어 버선까지 피범벅이 되고 피부가 벗겨졌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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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을 지키다가 공산군의 총탄에 맞아 순교하신 복음전도사와 헌신의 삶을 오는 세대에 물려주었다. 당신이 못다한 사역은 남은 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신 것이다. 순교한지 1년 동안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솔무등에다가 매장했다가 이듬해 2월 호남지방화장으로 장례식이 거행되었으니 그 당시를 회상하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추모인파각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장례식이었으니, 백범김구선생의 장례행렬보다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사역중에 모든 이의 어머니였고, 산모들에게는 산파였으며, 한숨짖는 가정에 가서는 찬송으로 위로하였는데 천국가와 허사가를 불러 소망을 심었으니, 이를 들었던 사람들은 아직도 그 감동을 잊지못하고 있다. 문전도사님의 거룩하고 순결한 순교의 뜻을 이어받아 수 많은 열매로 맺혔다. 당신께 사랑의 큰 빚을 진 모든이들이 그 뜻을 기리며 여기 기념비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