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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2025년 9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상원에서 국제연맹 조약의 불완전한 점을 지적하면 서, 미국이 이 조약을 비준하는 것은 일본의 압제에 있는 한국인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 다. 그러면서 일제가 3·1운동에 참여한 만세시위자 들을 구타하고, 혹독하게 고문을 하였다는 것을 밝 혔다. 노리스 상원의원은 일제의 악독한 식민지배와 한국인에 대한 차별적 정책 등을 고발하였고, 한국 독립을 지원하는 연설을 했다. 그는 일제의 한국 독립운동 탄압 증거자 료를 제출하여 자신의 주장을 입증 하였다. 미국 의회에서 한국문제를 주요 의제로 부각시키는 데에 커다 란 역할을 하였다. 또한 네브라스카주의 교육계·실 업계·종교계·언론계·정치계의 유력 자 1천 여명이 1920년 3월 20일 미 국정부와 상원에 일본의 잔혹한 학 대를 받은 한국민을 위한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이 청원서에는 주지사 매켈비(Samuel Roy McKelvie), 검 사총장 모리세, 고등재판소 판사장 코니쉬, 네브라스카대학 총장 에버 리(Avery) 등 지역을 대표하는 유명 인사들이 서명을 하였다. 네브라스 카주 유명인사들이 제출한 청원서 에는 다음과 같이 강력한 내용을 담 고 있다. “우리는 이 청원으로 합중국 국회 에 지원하노니, 합중국 국회는 무슨  수단을 쓰던지 필요한 수단을 다해서 한국 안에 정 의와 인도를 회복하게 하고 그리함으로 한국에게 아 메리카 인민의 우의를 보이게 하소서.” 서재필과 이승만은 3·1독립선언 이후 미국 동부지 방에서 한국 독립운동에 대해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위해, 1919년 4월 필라델피아에서 제1차 한인회의 네브라스카 주민들의 청원서 기사(『신한민보』 1920년 4월 14일자) 한인소년병학교 출신 김현구가 쓴  박용만의 전기 『우성유전(又醒遺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