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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2025년 3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2월 9일부터 3월 30일까지 50여 일간 가량 필리핀 을 순방하고 중국 상하이로 돌아왔다. 도산이 필리 핀을 방문한 가장 중요한 목적은 만주지역에서의 이 상촌 건설과 독립운동 기지개척이 여의치 않은 관계 로 ‘남방’지역에서 이를 진행시키기 위해서였다. 만 주(중국동북) 지역에 대한 이상촌 건설과 독립운동 기지개척이 어려움에 봉착해 있을 무렵인 1929년 손아래 동서인 김창세 박사가 이상촌 후보지로 필리 핀을 돌아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제의하였다. 이에 그는 필리핀에 가게 되었다. 도산은 마닐라에 있는 필리핀 이민국을 방문하여 만주지역 한인들의 이주문제를 협의하였다. 그러나 그의 바램과는 달리 한인들의 필리핀 이주는 쉽지 않았다. 당시 필리핀 이민국장은 “중국인은 상민(商 民) 이외의 농민‧노동자는 일절 입국시키지 않으나, 조선인은 일본인임으로 여행권과 보증금으로 50원 이상만 지니고 오면 입국을 선선히 허가하겠노라” 는 입장을 보였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일본여권을 받는 것도 불가능하였거니와 보증금으로 일인당 50 원의 자금을 확보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 이었 다. 이에 도산은 만주지역에서 필리핀으로 한인들을 이주시키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도산은 당시 필리핀 상원의장 케손 (Manuel Quezon)을 비롯한 민주당 영수들과 만나 계속적으로 한인의 이주문제를 협의하였다. 도산이 필리핀을 방문했을 당시인 1929년 필리핀 에 재류하는 한인들은 모두 52명이었다. 이들은 조 국을 잃은 국제적 미아 신세임에도 조국의 독립을 찾기 위한 열성으로 “조국에 대한 의무를 만분지 일 이라도 다하여 볼까하는 열렬한 생각”을 갖고 있었 다. 그래서 중국 상하이에 있는 도산을 필리핀으로 초청하여 대한인국민회의 사업을 남방의 필리핀에 서도 계승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도산은 필리핀 동포들의 열성을 받아들여 필리핀 최초로 ‘대한인국 민회 필리핀지부’를 설립하게 하였다. 그리고 1929 년 3월 1일에는 마닐라에 있는 모든 동포들과 함께 ‘삼일절기념행사’를 거행했는데, 도산은 독립선언서 를 낭독하고 연설을 하였다. 안창호가 한인 이민을 협의하기 위해 방문한 필리핀 이민국(현재 모습) 안창호가 바기오를 방문하여 현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