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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비문 서기 1954년 음력 3월 3일 희생자 517명을 이곳으로 이장, 3개소 묘역을 조성, 위령비건립추진위원회를 조직, 추진하면서 1960년 경상남도로부터 50만 환을 지원받아 위령비는 건립하였으나,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부는 유족회를 반국가단체로 규정, 유족회 간부 17명을 구검하고, 경상남도지사의 개장명령에 의해 “정”으로 위령비를 파손하고, 땅에 파묻치고, 능지처참을 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1995년 12월 18일 거창사건관련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어 법률 제5148호에 의거, 2007년 4월 27일에 위령비를 재건하게 되었으니, 오호! 통재라! 다시는 이 땅에서 그런 비극은 원치 않노라! 서기 1951년 신묘 1월 6일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고정리 천인공노할 비참한 사실이 있었다. 저 6.25동란에 공산군의 남침으로 피를 흘린 것만도 겨레의 역사위에 뼈져린 자취를 남긴 일이라 하겠거늘 하물며 일부 미련한 국군의 손에 의하여 죄없는 양민들이 집단 살륙을 당했음이라. 당시 국회의원 신중목씨의 발의로 국회조사단의 손에 의하여 그 사실이 천하에 발표된 채 남은 친족과 동포들의 통곡 속에서 어느덧 3년 세월이 지나가 마침내 희생자들도 그 얼굴조차 분간할 길이 없어져 1954년 음 3월 3일 다만 남자, 여자, 소아 만을 구별하여 새 무덤에 안장하니 남자 109명, 여자 183명, 소아 225명, 합하여 517명이었다. 그리고 다시 6년이 지났건만 고을 동포들은 쓰라린 기억을 잊지 못하고 한 덩이 묘비를 세워 그립고 애통하는 정을 표하고자 함으로 이제 그 간절한 뜻을 받들어 붓을 들었건만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은 것이라 차마 무슨 말로 뒷세상에 기록을 남기겠느냐. 다만 여기 손을 씻고 외로운 혼들의 명복을 빌며 부디 후세 자손들에게 정의와 동포애를 지켜라 경고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