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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전설(124회) • 황해도 연백군 만세시위(6) 97 잡혀가신 선생님들이 보고 싶었다. 동무들과 머리 를 맞대었다. “어떻게 하면 보나?” “잡혀가면 본다.” “어떻게 잡혀가나?” “만세를 부르면 잡혀간다.” “우리도 만세를 부르자!” 배천시장 만세시위가 일어난 지 8개월쯤 지난 12 월 11일이었다. 오기영은 창동학교 동급생인 최승만, 김봉국, 최 이선, 오효동과 함께 다섯 명이 모여 습자지에 태극 기를 그렸다. 오후 2시경 이들은 태극기를 들고 학교 운동장에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다른 학생들도 달려 나왔다. 13~14명이 독립만세를 불렀다. 교장이 회초리를 들고 쫓아 나왔다. “저 잘난 교장이 우릴 때리려 온다!” “밖으로 나가 자!” 처음엔 학교 밖으로 나갈 용기는 없었으나 교장에 쫓겨 읍내로 나갔다. 그날은 배천 장날이었다.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장 보던 사람들도 합세하여 독립만세를 불렀다. 장꾼들을 이끌고 장마당을 한 바퀴 돈 후 학교로 돌아왔다. 가쁜 숨을 돌리기도 전에 헌병 보조원이 쫓아왔다. 오기영 등은 교장실로 불려 갔다. 헌병 보 조원들이 칼자루를 붙잡고 교장 곁에 앉아 있었다. “만세는 왜 불렀나?” “독립시켜 달라고 불렀습니다.” “너희가 만세를 부르면 독립이 되나?” “될 줄 믿습니다.” 번갈아 보며 질문하던 교장이 오기영을 보며 물 었다. “그러면 너희 부형들이며 그 전 이 학교 선생들이 이미 만세를 불렀는데 왜 독립이 아니 되었느냐?” “교장님같은 친일파 때문에 안된대요.” 교장은 펄쩍 뛰었다. “나 같은? 그 말 누구에게 들었니?” “모두들 그러는 거 들었습니다.” “모두라니, 누구야?” 교장이 꽥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고 보조원이 말 배천 예수교 학생들의 만세시위 상황에 대한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 고 등경찰과 보고전문(1919.12.19) 복간된 『동전 오기영 전집』(모시는사람들, 2019). 제1권이 『사슬이 풀 린 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