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page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미국 석탄광 와이오밍주에서의 한국독립운동 97 임없이 일어났다. 1918년 7월에는 김흥규가 석탄광 갱속에서 돌을 깨다가 돌과 기둥 사이에 팔이 끼이 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럼에도 석탄광에서의 노동은 매년 임금이 올라가서 경제적으로는 인기가 있었다. 1920년 당시 석탄광에서 노동을 하면 매일 5달러 42센트, 갱에 들어가 일을 하면 6달러 42센트, 도급 일은 맡아 하면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가 있었다. 하 루 8시간 외에 노동을 하면, 한 달에 300달러까지 벌 수가 있었다. 와이오밍 슈퍼리어 석탄광에는 백만수가 노 동주 선소를 운영하면서, 미국 각지의 한인들을 불러들였 다. 그러나 석탄광에서의 사고는 항상적인 것이다. 전라도 임실 출신의 노동자 한규현은 1926년 12월 10일 오전 8시 30분 사고를 당하고, 바로 락스프링 스 병원에 이송되었지만 다음날 새벽 1시 30분에 사 망하고 말았다. 『신한민보』에 실린 「와이오밍 지방회 설립을 논란함」 논설(1918년 7월 25일자) 국민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문화재전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미주한인사회의 한국독립운동』, 『미주한인사회 의 독립운동가』, 『권승렬 평전』, 『일제의 한국농업정책사연구』, 『일왕을 겨눈 독립투사 이봉창』 등이 있다. 필자 김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