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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⑪ 97 고 돌아왔다. 손자 창로가 강효석과 함께 와서 잤다. 26일 울진 살던 윤상우가 와서 보았다. 27일 아침에 보니 밤사이 눈이 내렸는데 사람 과 말의 발자국을 겨우 덮을 정도였다. 김창부, 황의 영이 왔는데, 김창부는 추가(鄒街)로 떠나고 황의영 은 그대로 남아서 잤다. 28일 실아가 대사탄(大沙灘)에서 나귀를 끌고 돌아왔다. 29일 집의 아이와 송덕규가 대사탄으로 출발 하면서 실아에게 두부를 만들도록 하였다. 나는 어제 오후부터 문득 한감(寒感=감기)이 들어 밤새도록 매 우 앓았더니 입맛이 갑자기 떨어졌다. 객지 생활의 험난함이 병통이 아닌 게 없으나, 또 외기(外氣)의 침 법까지 당하니, 꼭 이른바 엎친데 덮친 격이다. ‘오중 (吳中)의 농어회 생각’이 더욱 절실하건만, 병으로 고 통스러울 때 수저를 들고 놓음에 구미를 돋울만한 것 이 없어 안타깝다. 30일 이재섭(이상룡의 아들 이준형)이 조재기 와 함께 와서 잤다.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고려대에서 경제학 · 정치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율곡 연구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 임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이사를 맡고 있다. 시대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풀어낼 지혜를 지나간 역사에서 찾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면암 최 익현 선생의 5대손이다. 필자 최진홍 김대락·이상룡 등 안동 출신 망명지사들이 크게 기여한 남만주 유하현 삼원포의 추가가 신흥학교터 추정지(독립기념관 제공) 김대락이 만났던 이철영·이회영 등 6형제의 서간도 망명 논의 상 상 화(우당기념관 제공).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석영·호영·건영·철 영·시영·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