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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④ 97 기고 강변길을 따라 걷다가 갈림길을 잘못 들어 몇 리 길을 허비하였다. 날이 이미 정오가 된지라 퉁거 우(通溝)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북산까지 거리가 20 리쯤이다. 이렇게 더디고 늦어서야 어찌 도착하겠는 가? 걱정스럽고 안타깝다. 황도영(黃道英)도 강을 건 너서 전송해주니 감사하다. 상주 김사용과 남해의 윤 일, 울진의 곽(郭) 모가 함께 떠났다. 곽모는 어머니와 아내를 데리고 가는데, 이고 지고 따르는 걸음이 보 기에 몹시 간군(艱窘)하다. 12일 맑음. 쉬었다 가는 가게마다 주인이 선량하지 않은 곳이 없으나, 다만 내놓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 칠십 년 익힌 식성을 갑자기 바꾸지 어려우니, 맛있는 음 식과 잘 빚은 술의 해로움을 후회해도 미칠 수 없다. 탄식할 일이다. 13일 맑음. 지나온 지방에 역력히 말할 만한 명산대천이 없 고, 사람들이 듣고 볼만한 무당의 노래와 춤 또한 말 로 표현할 수 없다. 언어가 서로 달라 사람을 만나도 지나온 곳이 어느 마을인지 물어볼 수가 없다. 이 때 문에 어느 곳, 어느 객점이라 쓰지 못하니 흠이 될 만 하다. 14일 맑음. 장차 쾌다모자(快多毛子)에서 기숙하려 하는데, 뒤 따라 들어온 사람들이 모두 다리가 지쳐 앞으로 나아 갈 수가 없었다. 집 아이가 말을 사서 각각 태우려 하 였으나 말에 얹을 안장이 없는지라, 어둠을 무릅쓰고 나아가면서 짐을 옮기려 하였으니, 쾌다모자에 일찍 이 친하던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15일 맑음. 30리를 새 말을 타고 오후 9시 통화현(通化縣)에 이르렀다. 앞에 말을 몰 사람이 없는데다 말을 멜 말 뚝도 없이 고삐를 잡고 허둥댈 때, 객점의 아이 하나 가 자기 고삐로 문설주에 매어주었다. 그들 남녀 중 장성한 자들이 자리 위로 인도하니 요동(遼東) 풍속 의 후함을 이것으로 알 수 있겠다. 길림성 유하현 홍석진(紅石 镇 ) 부민단 제2구 본부 터(유하현 삼 원포)  유하현 고산자진(孤山子鎭) 서로군정서 본부 터(이상 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