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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제일교회는 1931년에 세워진 감리교회 예배당 건물이다. 2012년에 새 성전을 지어 예배처를 옮기기 전까지 80년간 예배당으로 사용하다가 2018년부터는 공주 기독교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공주는 미국 북감리회가 조선선교를 시작하던 초기 1892년부터 중요 선교대상지로 주목된 곳이다. 공주제일교회는 초기 선교사들이 남부 선교스테이션을 공주에 설치할 때 그 중심교히로 세워졌다. 초기부터 수원 이남 지역 전체를 이끌던 선교본부로서 외국 선교사들이 상주하며 남부와 선교와 공주의 근대문화를 이끌었다.
1902년 김동현 전도인을 통해 공주 관찰부 앞에 첫 교회가 세워진 후, 1903년 의료 선교사 맥길(William. B. McGill)과 전도사 이용주가 하리동(지금의 영명학당길)에 초가 2채를 구입해 예배를 드렸으며, 이후 협산자 예배당(1909~1931)을 거쳐 현재의 장소에 자리잡게 되었다. 선교사들은 이 예배당을 중심으로 충청지역 최초의 사립인 영명여학교와 영명남학교를 세우고 영아원과 유치원을 이끌며 전국 최초 우유급식소를 설치 운영하였다. 뿐만아니라 민족대표 중 한 사람인 신홍식목사가 담임목사로 설교(1916~1917)를 하였고, 유관순(1902~1920) 열사가 학창 시절 예배를 드리던 교회이며 이후 3.1만세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던 교회로 근대 역사적 의미 또한 깊다.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크게 파손되었지만, 남아있는 반지하층과 벽 등을 수리하여 1956년에 복원하였다. 이떄 제단과 출입구의 위치가 서로 바뀌었으며 폭격 전 측면에 세워졌던 종탑이 복원 때 정면의 가운데로 옮겨졌다. 1979년에 증축하면서 종탑 아래에 현관을 두었고, 현관의 좌우 창과 본당 강단 뒷벽에 스테인글라스를 장식하였다. 이 작품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형상화한 것이다. 공주제일교회는 개축과 증측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한국 초기 건축의 특징 중 하나인 고딕양식의 형태를 잘 보존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