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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훈록 1919년 3월 21일 제주 신좌면(新左面) 조천리(朝天里)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제주의 만세운동은 조천에서 시작되었는데, 조천의 만세시위는 기독교 인사들과 유림이 연합하여 일어났다. 이러한 조천의 만세운동계획은 서울 휘문학교에 유학하고 있던 김장환이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가한 뒤 3월 15일 귀향하여 서울에서의 만세소식을 알리면서 구체화되었다. 그리하여 김장환의 백부이며 제주도 내에서 명망이 높던 김장환(金章煥)은 뜻을 같이 하는 김시범(金時範) 등 동지 13명과 함께 조천리에서 조금 떨어진 '미밑동산'에 들어가 결의를 다짐하면서 거사일을 3월 21일로 정하고 만세운동을 추진해 갔는데, 김필원은 이 때 만세운동 계획에 참가하였다. 이들은 조천 뿐 아니라 이웃의 신촌(新村)·함덕(咸德) 등지에도 만세운동의 계획을 알리면서 서당 생도와 함께 보통학교 학생들까지 동원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 그리하여 거사 당일인 3월 21일 김필원 등은 거사장소인 만세동산으로 나아가 6백여 명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조천의 만세시위는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져 다음날인 22일과 장날인 24일까지 일어났으며, 이어 도내 각처로 뻗어 나갔다. 그는 이 일로 피체되어 1919년 4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아 공소하였으나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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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 3.1만세운동을 주도하신 14인 동지 김필원의 생가터 2010.10 조천리